(함께 나눠요) ‘다르다=틀렸다?’ <발렌타인 로드>가 던지는 질문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1/25
'다르다=틀렸다?’ <발렌타인 로드>가 던지는 질문들
(↑19회 개막작 <발렌타인 로드> 스틸컷)
‘다르다’는 말과 ‘틀렸다’는 말을 같이 사용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그게 다르더라”라고 해야할 때에 자기도 모르게 “그게 틀렸어”라고 말하는 거죠. 저는 예전에 그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가족구성원에게 “다른 건 틀린 게 아니에요”하고 한 마디를 했다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 왜 그렇게 말대꾸를 하냐, 는 식으로 쓴소리를 잔뜩 얻어먹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굴하지 않고 그 이후에도 어딘가에서 그런 식의 표현들이 나오면 움찔하고 끼어들고 싶어합니다.
다른 걸 틀렸다고 여기는 게 잠깐의 실수일까요?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가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평범함’과는 ‘다른’ 사람이 있을 때 ‘틀린’ 것처럼 가치판단을 쉽게 합니다. 학교에서 ‘게이 같은’ 학생이 있으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직장에서 ‘여성스럽게’ 입지 않는 여성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충고’를 하고, 범죄의 피해자인데도 슬퍼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으면 의심하고 욕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정상적인’ 사람을 생각하고 기준으로 삼아 그것과 들어맞지 않는 것을 ‘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상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남들이 대부분 그렇게 쓰니까/나를 돌봐준 사람들이 그렇게 가르쳐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강해 보여서/혹은 종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자신까지도)을 차별하고 이유없이 고통스럽게 하는 건 아닌지.
19회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발렌타인 로드>에서는 분명 성소수자인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있는데, “다른” 성별정체성을 표현한 래리(레티샤/라토냐)가 “틀렸기 때문에” 살해가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그/녀가 좋아하던 브랜든에게 데이트신청을 하자 친구들이 브랜든을 놀렸고, 브랜든은 래리(레티샤/라토냐)의 머리에 두 발의 총을 쏘아 살해했습니다. “교사와 배심원, 변호인, 그리고 유력 언론사들은 래리의 “위험할 만큼 주목을 끄는” 젠더 표현에 초점을 맞춥니다. 교사들은 피해자가 ‘남성’임에도 과장된 여성적 꾸밈과 행동을 드러냈으며 이것이 브랜든을 포함한 다른 학생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했는지 증언합니다. 배심원들은 그러한 젠더표현으로 인해 브랜든이 “게이공포”에 빠졌다는 식의 변론에 공감하며 그를 동정하고, 심지어 무고하다고 여깁니다. 언론은 결국 성소수자 혐오로 인한 살인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개인의 특이하고 반사회적인 성향이 부추긴 살인사건으로 희석시키려 합니다”(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 야릉, <발렌타인 로드> 인권해설 내용 참조).
누군가가 죽임을 당하는 시절에 사과가 아닌 변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해자가 아파서, 취해서 그랬다는 뱀발은 고이 접어두었으면 좋겠습니다. 혐오의 공기 안에서 숨쉬던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 공기 안에서 다시 용서받는 현재를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요즘은 유독 “혐오”가 공기처럼 꽉 차 있고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독가스같은 공기가 꽉 차 있을수록, 몇몇의 작은 불빛으로도 태워 날려버릴 수 있는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해 혼자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를 여러 번 만나게 되면서, 씁쓸한 현실이지만 이럴 때 사람들이 더 많이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도, 더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다름과 틀림을, 정상과 비정상을, 선택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용서와 풀리지 않는 억울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19회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작] 발렌타인 로드: http://hrffseoul.org/ko/film/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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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임활동가 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