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성소수자 인권포럼 후기, 핑크워싱은 이제 시작이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3/08
성소수자 인권포럼 후기, 핑크워싱은 이제 시작이다
(↑ 사진: 성소수자인권포럼 첫날의 서울인권영화제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부스 모습)
서울인권영화제는 2월 25일~26일 연세대 백양관에서 열린 성소수자인권포럼에 참가했어요. 25일엔 <퀴어들의 천국은 없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으로 세션 발제를 맡았고, 25~26일 내내 부스 참가로 함께했습니다.
(↑ 사진: 20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핑크워싱’ http://hrffseoul.org/film/1952)
<퀴어들의 천국은 없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세션의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습니다. 세션 시작 후에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인파에 최종 참가자 집계수는 90에 달했습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류민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활동가 3인이 발제를,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첫 시작은 작년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핑크워싱> 의 짧은 버전을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핑크워싱>은 현재 각 단위에서 상영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http://hrffseoul.org/ko/screening)
(↑ 사진: BDS 운동 로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는 핑크워싱의 개념, 왜 이스라엘에서 퀴어인권을 국가 브랜드 창출 과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지, 팔레스타인에서 요청한 BDS운동(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 불매, 투자철회, 경제 제재)은 어떻게 시작되어 이어지고 있는지 설명해주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울림 독자분들을 위해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발제문 전문을 여기에 공유합니다(http://bit.ly/SHRFFnotoPW).
퀴어 인권이 국가 홍보 수단으로 이용되는 모습은 몇몇 지점에서 관객에게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남성으로 보이고 신문을 든 두 사람의 사진은 이스라엘에서 때에 따라 다른 홍보물로 사용됩니다. 한 때는 "퀴어 인권" 홍보물로, 또 다른 때는 "언론의 자유" 홍보물로 사용됩니다. 이는 애초에 이 사진이 퀴어 인권을 위해 촬영된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이스라엘에 필요할 때에만 "퀴어 이미지"로 소비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사진: 이스라엘 홍보 포스터 사진)
BDS운동이 한국과 만나는 지점에서 특히, 우리가 흔히 마시는 자몽이 함유된 소주는 이스라엘산 자몽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과 같이 이스라엘이 불법점령을 계속 하고 있는 한,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곳에서, 팔레스타인 농부가 키웠다고 하더라도 농산물은 외부에 '이스라엘' 산으로 표기되어 수출됩니다. 자몽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는 것에서도 식민지배를 승인할 수 있다는 메세지는 청중들에게 큰 울림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왜 핑크워싱이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어야 할 의제인지에 대해 영화제의 작년 경험을 중심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 퀴어 영화 선정에서부터 섭외 취소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취소에 무엇이 고려되었는지를 가까운 거리에서 전할 수 있어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http://hrffseoul.org/ko/article/2112) 당시 섭외 취소한 영화는 브랜드 이스라엘 홍보를 장려하는 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아차 했던 순간처럼 '팔레스타인의 인권 침해 현황을 아는 것'과 '이스라엘 국가 홍보 노선을 천명하는 재단 지원을 받은 퀴어 영화를 상영하는 일'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국제법상 불법임에도 이스라엘 정착촌을 짓는다는 명목 아래 팔레스타인 마을의 집들은 철거당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권유린 상황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총기를 들고 그 상황을 통제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사진과 같이 서안지구에서 시위자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군인의 임무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군 장교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재단의 돈으로 만들어진 퀴어 영화가 ‘그저 성소수자 친화적인 퀴어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사진: 서안지구에서 시위자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이스라엘군 출처: Aljazeera)
표현물은 필연으로 정치적이고 어떤 입장을 가집니다. 아무런 입장을 가지지 않은 중립적인 표현이란 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내용 뿐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개입했는지도 그 입장을 만들어냅니다.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로서 우리는 영화의 내용 뿐 아니라 표현물 제작의 배경에도 어떤 의도가 개입되어 있음을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그리고 우리도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폭력의 입장에 공모할 뻔 했기에 지금 한국에서의 핑크워싱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울림 독자분들을 위해 서울인권영화제 발제문 전문을 여기에 공유합니다(http://bit.ly/SHRFFnotoPW).
마지막 발제는 류민희 활동가가 국제법과 국제성소수자 운동의 관점에서 BDS운동을 풀어내 주셨습니다. “우리(퀴어)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을 두고 보지 말자”는 강한 울림을 남긴 발제였습니다. BDS운동은 일찍이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조직되어 성공을 거둔 운동입니다. 이 기억을 따라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도 이스라엘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BDS운동을 조직했습니다. 한편 그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습니다. 반 BDS운동 측에서는 BDS가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BDS는 유대인에 대한 공격이 아님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BDS 활동가들을 폭력과 탄압으로 진압합니다. 이러한 탄압에 대해 많은 국제인권단체들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BDS라는 운동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BDS가 불법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사실이 아닙니다. EU를 비롯한 많은 정부에서 BDS가 법적으로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했음을 이 발제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BDS운동도 그 효과성에 대해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진영 내부 몇몇에서 논란이 있어왔지만, 그럼에도 BDS운동과 이에 따른 논쟁이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 상황을 널리 알렸음에는 분명 의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으로는 안 된다", 즉 퀴어 인권으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로 마무리된 발제는 짧은 시간임에도 알차게 느껴졌습니다.
발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 그 중에 첫 번째로 발언을 하게 된 분은 자신을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분은 발제가 반유대주의적 내용이며, 여성인권, 퀴어인권을 이스라엘에선 보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협업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피해를 받는 것이라고도 발언했습니다. 두 번째 발언자는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의 친구라고 소개하며 "전범국"이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발제에서 계속해서 설명한 사실들과 완전히 대치되는 이러한 발언들이 이어지는 동안, 이 발언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몇몇 청중들은 발언 도중에 토론장에서 나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첫 발언자의 주장은 서울인권영화제가 <제 3의 성> 상영 취소 결정을 하며 이스라엘 대사관과 영화 배급사에게서 받았던 메일의 내용과도 거의 완전히 같았습니다.
발제자들은 발제가 유대인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 건설과 잘못된 확장과정에 대한 비판임을 확실히 했습니다. 국가에 대한 비판을 유대인에 대한 화살로 돌리는 것은 내용에 대한 왜곡이었습니다. 답변을 통해, 분명 발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개인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 이미지의 잘못된 홍보 방식에 대한 지적이었음을 환기했습니다. 또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협업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합니다. 그 땅 곳곳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산재해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이 함께 일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는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전범국 표현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일한 표현을 UN에서도 사용했고, 잘못된 정착촌 건설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여러 차례 이스라엘 정부에 지적한 바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발언자는 끝까지 이러한 답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세션에 참가했었던 다른 분들에겐 시간이 없어 발언 기회를 모두 드리지 못해 아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추후 온라인 상에서 지지와 연대의 메세지들이 전해져왔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의 코앞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핑크워싱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이런 기회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브랜드 이스라엘을 위한 제작 지원을 받은 영화가 각지의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이러한 선전술이 팔레스타인 인권 탄압을 가리는 것에 반대합니다. BDS운동에 연대하며, 서울인권영화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에 더 예민해지겠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더 힘차게 행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