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익숙하지 않은 것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4/05
익숙하지 않은 것들
안녕하세요. 자원활동가 혜지입니다.
저는 요즘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한창 열심히 하던 것을 잠시 그만두었습니다. 하던 것을 멈추려던 그 순간에,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음악 하는 걸 꿈꿨지만 현실에 적당히 타협했다고. 어른들에게 늘상 들어왔던 이야기인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저는 일기를 쓰지 않기엔 아까운 하루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나는 음악을 ‘해보지도 못하고’ 현재가 될까? 아니면 음악은 ‘해 본’ 현재 일까? 그것도 아니면 음악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이 문장들에 ‘음악’과 ’현재‘ 대신에 들어가야 할 마땅한 내 단어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일년동안 뭐할꺼냐 물어보면 단어를 찾는 중이라고 말해도 될까 싶습니다.
익숙한 동네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로 이사를 오고,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다가 요즘은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해도 될까 하는 얼굴들을 만납니다. 개중에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렵지만, 말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얼마전 일기에 그 이유를 이렇게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진짜 나’와 ‘꾸며진 나’ 는 뒤섞여서 진짜 내가 누군지 찾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조차도 감히 들춰볼 수 없었던 ‘진짜 나’는 분명 내가 소중하게 품고 있었으니 고유하게, 그대로 존재할 줄만 알았다. 언젠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두의 눈으로 확인해 봐도 아무렇지 않을 그 때를 그리며 소중하게 품어왔던 그것을 마침내 들추어보니, 내가 생각하는 그 원래의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이 낯선 사람이어서, 내가 낯가리는 사람이어서 말을 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하려면 내 속의 것을 들추어 봐야하고, 들추어 본 그것도 내 상상 속 그것이 아니니까 더 낯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익숙하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더 익숙해져갑니다. 이제 영화제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길에서 봐도 손을 뻗어 인사할 수 있게 되었고, 소중하게 품고 있던 그것을 위해 책도 읽고, 자주 들추어보는게 낫겠다 싶어 글을 쓰고 나누는 모임에도 나갑니다.
제 모습이 저에게 익숙해져가는 기쁨을 여러분들과 곧 나눌 수 있길 바라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