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자막작업을 하면서 새울 밤을 생각하니 설레네요_자원활동가 세정과 함께하는 자막교실 스케치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4/19
자막작업을 하면서 새울 밤을 생각하니 설레네요_자원활동가 세정과 함께하는 자막교실 스케치
작년에 자막작업을 하던 자원활동가들이 이상하리만큼 부러웠다. 기술자막팀은 몇 날 며칠을 밤을 지새우며 피곤해했지만 그만큼 돈독해졌다.그래, 난 그 돈독한 사이가 부러웠던 거다. 올해는 어디 나도 한 번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기술자막팀에 발을 담가보기로 했다.
드디어 열린 자막교실. 자막을 다는 작업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도 포토샵도 하물며 그림판까지. 뭐 하나 잘 다루는 게 없어 자막교실이 시작하기 전까지 속으로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괜히 민폐만 끼치면 어떡하지, 내가 도움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으로 내 마음은 가득 차 자막작업에 대한 설렘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아이코야. 설상가상으로 노트북에는 자막 작업 프로그램이 깔리지 않았다. ‘난 기술과는 먼 사람인가보다.’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사무실의 색 바랜 벽지만 뚫어지라 쳐다봤다. 다른 활동가들의 잘만 돌아가는 노트북 소리를 듣고 내 노트북을 보니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휴, 아닌 척 다른 활동가들에게 밝게 인사를 했지만, 주눅 든 마음은 어찌할 구석이 없었다. 괜히 가지고 온 초콜릿만 이래저래 만질 뿐이었다. 그 사이 자막 교실 선생님은 수업 준비를 마치셨다.
(↑노트북을 두고 와 자막작업을 할 수 없던 윤하, 그런 윤하의 필기가 담긴 자막교실 유인물)
이내 곧 수업은 시작했고 어찌할 바를 모른 내 손은 노트북 마우스패드가 아닌 펜을 쥐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선의 노트북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열심히 필기했다. 필기하면서 ‘이렇게 하는구나.’ 대답을 내뱉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남선이 노트북을 내밀기 전까지 말이다.
(↑열심히 자막 작업 기술을 전수받는 자원활동가 남선)
남선은 말했다. “윤하도 한 번 해봐.” 나는 놀라서 말했다. “내가?” 그러자 남선은 “응. 윤하도 해봐야 알지. 난 한 번 했으니까 이번엔 윤하가 해봐.”라고 했다. 당황스러움을 0.00001초 느꼈을까? 난 아무렇지도 않게 노트북을 내밀어준 남선이 참 고마웠다. 남선의 도움으로 자막을 붙여보았다. 아까의 이해는 어디로 갔는지 자막을 제작하는 팔레트 하나 만들기가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보다 더 어려웠다. 이래서 사람들이 실전은 다르다고 하나 보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자막의 글씨체, 크기, 위치, 색깔 등을 설정하고 나니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생기자 나만 이러는지, 물어봐도 되는지 또다시 걱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여기는 서울인권영화제다. 모른다고 날 다그칠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나 자신을 토닥이며 휙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곧바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다른 활동가들은 ‘이런 것도 몰라?’ 하기보다는 나와 같이 선생님의 설명을 진중하게 들었다. 혼자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오늘 일은 일기에 쓸 거야. 이런 나를 놀리거나 나무라지 않았어. 감동이야.’ 이 감동을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곱씹어서였는지 감동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방에 갇혀 자막기술을 연마하는 활동가들. 그 누구도 윤하를 다그치지 않았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남선의 노트북으로 자막 작업을 배워볼 수 있었다. 선생님이 조심해서 봐야 할 부분을 말하기가 무섭게 실수를 했지만 더는 나의 실수가 걱정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모른다고 또는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내 행동을 평가하고 핀잔을 주기보다 내가 하려는 과정을 알려주려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 점차 영상의 원 자막과 내가 만든 자막의 싱크로율을 맞추는 게 재밌어졌다.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힘들다는 자막 작업을 같이할 것이다. 다른 이들이 말한 것처럼, 작년에 내가 봤던 것처럼 자막 작업을 하면서 몇 시간 동안 컴퓨터 화면을 보느라 눈이 빠질 것이다. 또, 여러 밤을 새울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 고된 일들이 내 앞에 줄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자막팀과 함께 보낼 새벽들이 기다려진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