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를 만나다) 서울인권영화제는 나에게 똥이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5/17
(자원활동가를 만나다) 서울인권영화제는 나에게 똥이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자원활동가들의 힘으로 만들어집니다. 서울인권영화제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만들어가는 자원활동가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번 자원활동가 인터뷰는 22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중 세 분이 만나, 평소에 하던 이야기 대신 각자가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을 하며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메타몽의 신난 손목, 쇠똥구리의 자화상, 꽁기가 좋아하는 바디 스프레이)
1. 성함 (본명이 아니어도 됩니다. 활동명/별명)
메타몽: 메타몽입니다
쇠똥구리: 쇠똥구리입니다.
꽁기: 꽁기입니다.
(셋 모두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던 활동명이 있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서로 보여주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해보고 싶어서 다른 이름으로 서로 인터뷰해보기로 했어요!)
2. 자신이 현재 하는 일 혹은 관심사 등,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말
쇠똥구리: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일과 관심사는, 이주 관련된 일이고,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메타몽: 저는 요즘 폭력적인 일하기 방식, 예를 들어, 누가 누구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는 게 용납되는 방식의 일하기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저도 그렇기도 해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또, 제가 최근 만나는 친구들이 다 페미니즘도 좋아하고 여성 성소수자인 경우가 많아요. 저한테는 이 두 개가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건데, 이게 분리돼서 생각되는 많은 경우들이 의문스럽습니다. 하지만 사실 깊게는 생각 안 하고 있어요.
꽁기: 전 알바하면서 영화제 활동을 하고있고요. 음.. 요즘 연애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제일 많이 얘기합니다. 또, 어제 마침 MBTI를 봤는데, INFP래요. 사실 맞나 모르겠지만.
3. 어떻게 서울인권영화제를 알게 되셨나요?
꽁기: 저는 재작년에 오프라인에서 포스터를 보고 ‘와- 포스터 예쁘다’ 하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네요.
쇠똥구리: 제 친구가 인천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오래 했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저희 영화제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글을 공유한 걸 보고, 재밌겠다 싶어서 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백수여서 이렇게까지 일이 많을 줄, 본업을 뒤로하고 오게 될 줄 모른 채.
메타몽: 저는 제가 15년도 때 여기를 처음 왔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얼마 전에 엔드라이브를 다 뒤졌더니 십대 때 여기를 온 적이 있었어요. 사진을 보니까 어떤 친구랑 왔는지도 생각이 나는데, 어떤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청계광장에서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기억이 희미해서 맨 처음에 어떻게 왔는지 잘 모르겠네요.
4. 자원활동을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꽁기: 저도 15년도 때 영화제를 왔었는데, 그때 자원활동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자원활동을 결심하게 된 건 작년 시험 기간에 휴학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구실을 찾고 있다가 너무 갑자기 서울인권영화제가 생각이 나서 홈페이지 들어갔더니 때마침 모집 하고 있었고! 그래서 딱 신청을 하게 되었네요.
쇠똥구리: 저는 계기가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굳이 찾아보자면, 저는 2015년도에 페미니즘 공부를 했어요. 일 년 동안 되게 재밌게, 하지만 어렵게 공부했어요.. 그게 끝나니까 뭔가 더 배우고 싶은데 어떡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여기 가서 더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실 침대에 누워있다가 페이스북을 보고 나도 모르게 이걸 신청하고 있었어요.
메타몽: 나는 갑자기 생각났는데, 작년 12월에 퀴어영화제랑 인권영화제랑 같이하는 ‘퀴어, 인권’이라는 공동상영회를 미디어카페 후에서 했었는데, 어떤 친구랑 같이 갔었어요. 그날 거기 부스에서 제 친구가 뭘 사면서 상임 활동가랑 장난을 엄청 오래 쳤어요. 처음 만난 사람 둘이서 그렇게 잘 노는 게 너무 신기하고 인상 깊어서 집에 가는 길에 인권영화제 찾아봤는데 자원활동신청이 떠 있길래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5. 영화제 활동을 해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꽁기: 제가 최근에 좀 우울한 일들이 있었는데 지나가는 말로 힘들다고 한 걸 기억하고,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불러내서, 다들 바쁜데 새벽까지 얘기 들어주고 그랬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막 새벽까지 이야기하다가 나와서 아침에 사무실 밖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너무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에 약간 눈물이.. 그 시간이 너무 따뜻했던 기억이 나네요.
쇠똥구리: 저는 이런 훈훈한 이야기 다음에 나오기는 좀 그런데, 저는 처음 밤새워서 여기서 일했던 날이 생각나요. 회의실에서 뮤직비디오 띄워놓고 각자 할일하고 수다떨고.. 제가 그동안 했었던 단체들은 되게 진지하게 공부하고 책 읽고 하는 단체들 이었는데, 여기의 일하는 방식은 너무 다른 거예요. 그날은 그래서 ‘아 이 사람들 일을 빨리하고, 이럴 거면 집에 가면 될 것 같은데’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꽁기님이 말한 것처럼 여기 너무 따뜻하고, 한 시간씩 같이 울어주고 그러잖아요. 그런 게 요즘 저한테 되게 필요한 방식이고 단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메타몽: 저는 사실 딱히 기억에 남는 순간을 얘기하기에는 너무 현재여서, 기억에 남는다는 게 적어도 6/4 이후(영화제가 끝난 후)가 돼야 말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마침 생각이 난 건, 제가 저를 돌보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인데 제가 아토피가 살짝 다시 올라오고 있어요. 제가 아토피가 올라오면 일차적으로 하는 게 밀가루를 끊는 건데, 너무 귀찮고 별로 심하지 않아서 하지 않고 있었어요. 근데 어제 활동가 한 분이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저한테 전화 해서, 올라가는 길에 밥을 사 갈 건데 뭐가 먹고 싶냐는 거예요. 그때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떡볶이를 시켜 먹겠다고 해서, 같이 떡볶이 먹자고 그랬는데, 그 친구가 ‘아, 근데 너 여기 와서 매일 밀가루만 먹잖아, 내가 쌀 사다 줄게’ 이러면서 밥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봐서(아... 너무 따뜻해 이 사람들..) 근데 결국 밥도 먹고 떡볶이도 먹었지만(대폭소), 그런 따뜻하고 잘 챙겨주는 걸 보면서. 아 사람이 원래 서로를 이렇게까지 챙길 수 있는 존재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그래서 여기서도 잘하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 잘 챙겨줘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6. 영화제를 진행해오는 과정에서 고민되는 점이 있었다면?
쇠똥구리: 일단 저는, 이 영화제를 하면서 제가 영화라는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폭소) 책을 읽거나 연극을 보는 건 저한텐 여백이 있는 느낌이거든요. 근데 영화는 되게 촘촘하고 밀도 있게 저한테 들이닥치는 것 같아서 한번 보고 나면 그 영화를 복기할 시간이 필요한 거에요. 근데 이 활동은, 그럴 시간이 충분히 있지 않고, 계속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해야 되니까 이게 저한테 얹히는 느낌이 계속 드는 거에요. 하지만 어쨌거나 영화가 주는 미덕은 있잖아요. 영화제를 하는 것은 캠페인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또 그렇게 치면 인권영화라는 게 상업영화만큼 재밌지는 않단 말이야? 그래서 이 지점이 되게 고민인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좀 더 나와 내 친구들한테 다가갈 수 있는 영화제로 만들 수 있을지.
메타몽: 음, 저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과 적게 하는 사람이 나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시간이 좀 나서 일을 이것저것 하고 있고,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 이 활동을 동시에 하는 분들의 참여도가 약간 낮아지는데, 그게 싫다는 게 아니라 일들이 빨리빨리 진행되다 보니깐, 영화제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부분들이 생기잖아요. 그리고 반대로 저는 자원활동가니까 힘들면 말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는 분들을 보면서 좀 걱정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어떻게 챙겨줄 방법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만 딱히 생각이 나지는 않아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어요.
꽁기: 저는 해야 되는 일은 엄청 많은 게 눈에 보이고, 시간이 되긴 하지만 이 일을 제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이거 ‘잘’해야 하는 일인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게 좀 어렵고 고민이 돼요. 이 인터뷰 같은 것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요즘 한참 프로그램 노트랑 그런 글들을 썼잖아요. 그래서 저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는 글을 써본 경험이 없어서 내 문장이 뭔지, 내 문체가 뭔지 이런 것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이 문장이 잘 안 읽힌다는거 알겠는데 이걸 없애고 싶지는 않은 거죠(격한 공감). 너무 좋은 의견들이고 맞는 말이긴 하니까, 제가 쓰고 싶었던 표현들을 많이 잘라냈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이 시놉시스를 다시 읽어보니 이건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그런 글이 된 것 같고… 제 문장이 많이 지켜진 글은 오히려 더 애착이 가고. 아무튼, 그런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고민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혹시 나도 다른 사람 글에서 중요한 것들을 지워내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메타몽&쇠똥: 저도 글을 쓰면서, 제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이슈들이나, 너무 저나 제 주변인의 이야기여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 이슈에 관한 글을 쓸 때, 그 글이 제 글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 이슈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이 드니까, 내가 어디까지 고민하고 이 이슈를 다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까 너무 긴장하고 글을 쓰게 돼서 그 긴장이 글에 녹아들고 하는 느낌? 근데 그렇다고 내 고민들을, 내가 다 삭제하기는 너무 아쉬운 거지. 결국, 그 글은 다른 활동가들이랑 이야기해서 거의 다시 썼는데(웃음) 그게 조금 어려웠어요.
5. 자원활동을 계속해오면서 느끼는 점은?
쇠똥구리: 저는 일을 진행할 때 명료한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일을 할 때 리더가 강하게 있는 집단에 있는 게 편해요. 근데 영화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살짝 삐끗거리고. 이런 것들이 쇠똥구리가 똥을 탄탄하게 굴리는 느낌이 아니고 똥이 이렇게 좀 부스러기도 떨어지면서 굴러가는 느낌인 거에요. 그게 저한테 가장 큰 인상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오히려 이제 이렇지 않은 집단의 분위기가 저한테 힘들어지고 이 분위기가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 그래, 우린 결과도 잘 낼 거지만 그것만 생각하면서 가는 곳이 아니고, 그 과정이 중요한 곳이구나.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되게 중요한 거고. 이 사람들한테 에어쿠션이라는게 텔방에서 한 시간째 이야기 될 만큼 되게 필요한 거고 중요한 거구나. (일동웃음) 장난이고, 여기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계속 느끼고 있어요
메타몽: 저는 이렇게 영화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구나 알게 되는 게 신기하고, 쇠똥구리가 이야기한 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많은 곳이 그렇게 돌아가잖아요.맞아 그런 곳 많기도 한데, 그렇지 않은 방식의 일하기를 전에 한 번 시도해 본 적 있었는데, 너무 편한 나머지 일이 3명한테만 돌아갔었어요. 여기는 그보다는 훨씬 잘되어 있는 편이 어서. 하여간 어떤 게 필요한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분위기와 일이 동시에 진행이 된다는 게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고
쇠똥구리: 맞아. 그러면 몇 명만 갈려 들어가게 되잖아. 여기는 그렇지는 않아.
메타몽: 맞아. 그렇지 않은 편이야. 일이 많아서 다 갈리고 있을 뿐
꽁기: 저는 이제 좀 익숙해지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진짜 낯설었어요. 사람들도 낯설고, 여기서 하는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지만 해본 적 없는 이야기고. 막연하게 이런 편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여기 들어오고 나니까, 제가 여기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면서 나는 어디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쇠똥구리: 저도 제 친구한테 맨날 그 이야기를 하거든요. 다른 곳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는 여기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 여기에 맞는 사람 같지가 않아’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그럴 때마다 매번 ‘아니야, 네가 거기에 온 것 자체가 뭔가 닿아있기 때문에 끌렸던 거고 그걸 네가 네 말을 찾지 못했을 뿐이지 너는 그렇지 않아.’라고 이야기 한두 번 해주다가. 이제는 제가 그 말을 너무 많이 하니까 소리를 지르면서, 그 정도 했으면 되지 않았냐, 그만해라, 그러더라고요. (일동웃음) 그래서 저도 아직 그런 고민을 하긴 하는데 너무 걱정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6. 나에게 서울인권영화제란 ________다
공동답변: 좀 특이한 쇠똥구리
이유: 똥(영화제)을 단단하게 다져서 굴려 나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렇게 저렇게 만든 똥이 쉽게 부서지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아서. 좀 특이한 모양의 똥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7. 자원활동은 나에게 _________다
공동답변: 새로운 똥
이유: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똥(영화제)을 만들어 가고, 이전에 없던 방식이어서 그 모양도 새로운? 그리고 그래도 괜찮은. 어떤 사람이 함께여도,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만큼 함께해도 괜찮은.. 새로운.. 똥...
8. 서울인권영화제에게 바라는 점
메타몽 : 컴퓨터 다운될까 봐 무서움. 백업해주세요
쇠똥구리: 소셜펀치 들어가서 맨날 보는데 8% 엉엉. 제발 적자를 면했으면 좋겠고. 상임 활동가들이 활동비(월급)를 잘 받아갔으면 좋겠고. 오래오래 살아남는 것 이상으로 활동비(월급)도 잘 받으면서 살아나갔으면 좋겠고.
꽁기: 지금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영화제 전에 어떤 비영리 단체에 인턴을 지원했었는데 자소서 쓰면서 나를 팔아넘기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었는데, 여긴 나를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공간인 게 너무 좋아요.
9. 인터뷰하게 된 소감
메타몽 : 영화제에서 많은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영화제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잖아요. 그래서 되게 재밌고 좋았어요.
쇠똥구리 : 수다 떨 때랑은 또 다른 깊은 이야기인 것 같아서 좋아요. 이 이야기들이 우리끼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고, 혹시라도 같이 똥을 굴리겠다는 생각까지 하지 않을까.
꽁기 : 저도 인터뷰하기까지 되게 걱정이 많았는데, 하고 나니깐 별거 아니어서 속 시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