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그저 있어 주는 것만으로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1/31
스트레스에 취약한 저는 심신이 고단할 때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집니다. 특히 어떤 일에 타협점을 찾지 못한 날엔 더 그래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다행히 이런 제게 언제든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요. 바로 집 앞에 개천을 따라 한강까지 쭉 이어진 산책길인데 생각을 정리하거나 무념무상으로 걷기에 좋아요. (강추합니다)
그곳은 돈과 시간에 제약이 없고, 누구나 갈 수 있어요. 다들 무심하게 걷는 것처럼 보여도 무언의 규칙이 지켜지는 게 신기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육교 밑 같은 자리에서 색소폰을 부는 사람도 있어요. 그분을 몇 년째 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앞에 앉아있어도 곡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하하. 생각해보니, 더 마음에 드는 소리를 찾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겠네요. 덕분에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의 쉼이 어색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산책하는 강아지들도 구경하고, 친구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곳곳에 그리운 흔적들이 많은 그곳은 언제 가도 변함없을 것만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산책길 대신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 가는 날이 잦아졌어요. (앞으로 더 자주 오게 될 거라는데...!?) 저는 서울인권영화제를 넓은 의미에서의 ‘공간’으로 생각하면, 무언가를 나누고픈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곳’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매우 드문 공간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따뜻한 말과 애정 어린 시선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 고민이 정리되는 곳 이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했던 다짐들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다가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기도 해요.
제가 좋아하는 산책길과 닮은 점이 많아서일까요? 조금은 이른 고백을 하자면 저는 이 공간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처음 서울인권영화제를 알게 되고 제가 느꼈던 마음 그대로, 서울인권영화제가 그저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고마운 곳으로 지켜지기를 바라요. 언젠가 그렇게 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었지만, 서툴게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곳에 모인 마음들이 외롭거나 소홀해지지 않게 함께하는 모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함께할 분들에게도 미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