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1/31
<그림 1. 20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스틸컷>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역에서 사상 최악의 대지진이 발생한다. 리히터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이다.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였던 강진과 잇따른 쓰나미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자 후쿠시마현 핵 발전소가 가동 중지되었고 방사선이 노출되기에 이르렀다. 후쿠시마현 생존자들은 방사선 노출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실내 대피소로 대피했다. 동일본대지진은 당시 사망자와 실종자 2만여 명, 피난자 33만여 명이라는 절망적인 피해를 불러왔다. 수많은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인간은 자연에 비해 한없이 작은 존재이고 그에 따라 천재지변 아래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던가. 동일본대지진으로 당시 지역 장애인 인구 중 2%가 사망했다. 이는 비장애인 사망률의 2배에 이른다. 집보다 높은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포기합시다’라고 말했던 사토 마사아키 씨. ‘포기합시다‘는 곧 자신의 죽음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장애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사토 마사아키 씨. 미친 듯이 흔들리는 방에서 TV가 자신의 위로 떨어지지 않도록 다른 누군가가 잡고 있어야 했던 경추 손상 장애인 와타나베 후지오 씨. 긴급피난 명령이 떨어졌지만 타인의 발이라도 밟으면 어떻게 하냐며 피난하지 못했던 와타나베 후지오 씨. 거동이 어려워 행정관청에 보급품 배달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사사키 루미 씨. 재난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논의하던 세미나에서 우리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사고를 감지하고 우리에게 빛으로, 소리로 알려주던 수많은 알림이 지극히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화재상황을 현란한 빨간 불빛으로 알려주는 비상조명은 혹여 시각장애인이 비상조명을 등지고 있으면 아무 소용없다. 비상상황을 시끄러운 소리로 알려주는 비상벨은 혹여 청각장애인이 혼자 있다면 아무 소용없다. 비상시 전력 공급이 중단되어 엘리베이터 가동이 중지될 때를 대비한 비상구는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에게는 비상구가 아니다. 비장애인은 기본적인 알람들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보편화된 비상구로 대피할 수 있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대피 조치로는 대피할 수 없다. 재난 상황에서 그들은, 피난할 수 없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사고를 감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경보시설, 피난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보다 나은 ‘평등한 피난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마음 편히 피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가슴 깊이 바란다. 사회의 여러 위험에 노출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나의 울림이 당신을 울리고 사회를 울려 다시 우리에게 울림이 돌아오는 그날까지, 오늘도 모두가 안전하기를.
참고자료 경향신문 오피니언 [청춘직설]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손희정(문화평론가)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