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명절 어떻게 보내셨나요? 자원활동가들과 함께하는 명절 토크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2/27
(소식) 명절 어떻게 보내셨나요? 자원활동가들과 함께하는 명절 토크
(사진: 자원활동가들이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양이 누나가 근처 소파에서 자고 있다)
참석 : 나현, 혜지, 나영, 가비, 준혁, 야자수, 하린, 은진, 채영
무릇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원하든 원치 않든 일 년에 두 번 겪게 되는 연례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명절인데요, 명절에 딱히 의미를 두지 않는 저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가뭄에 단비와 같은 휴식일 수도, 어쩔 수 없이 지긋지긋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는 기간이지요. 설 연휴를 지내고 다시 모인 자원 활동가들은 각자의 명절 후기를 꺼내놓았고, 울림의 소식 글을 위한 활동가들의 명절 토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판은 벌어졌고,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 명절 토크에 꽤 많은 분이 공감할 것으로 예상하며 질문을 던져봅니다.
“모두 설 연휴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채영 : 저는 어머니랑 둘이 보냈어요. 시골에서.
나현 : 제사는 안 지내시는 거예요?
채영 : 저희는 안 지내요. 엄마가 시골 학교로 간 뒤로는 서울로 안 올라오시고, 할머니가 최근에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가 곧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원래 큰 어른이 그렇게 편찮으실 때는 제사를 안 지내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제사가 없었고, 이번에 들은 기분 좋았던 소식은 저희 막내 이모가 올해부터 제사 휴업을 시작했다고. (일동 박수) 원래 이모네서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음식을 다 가지고 큰집에서 먹는? 그런 이상한 구조였는데, 이모가 올해부터는 휴업한다고 해서 기분 좋았어요.
나현 : 웃긴 것은 파업했을 때 진짜 제사가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할 텐데, 한 명이 파업하면 “그럼 이제 하지 말자.”하고 아무도 안 한다는 거예요. 저희 집도 비슷한데 아빠가 장남이셔서 엄마가 맏며느리로서 (웃음) 일을 항상 부담했었는데 작년부터 맞벌이를 시작하신 엄마가 일 때문에 힘드시니까 올해는 당일에 할머니 댁에 가서 식사만 했거든요. 식사도 고모들이랑 다 같이 사서 데우는 요리만 먹었는데, 그러니까 아무도 (음식 준비를) 안 하더라고요.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하린 : 명절의 핵심이 이상한 것 같은 게 결혼 하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생면부지의 시댁 사람에게 내가 대신 절하고, 단순하게 그런 것만 따져 봐도 이상한 것 같아요.
채영 : 특히 여자들한테 (그런 것 같아요). 남자 집안에 가서.
하린 : 네. “너희 할머니이고, 우리 할머니이니까 같이 제사 드리자.” 이런 게 아니라 “내 할머니에게 네가 제사 드리자.” 이건 대리효도잖아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효도는 셀프입니다. (웃음)
나현 : 제사를 떠나서도 친척들이랑 만나잖아요. 전 친척들 이름도 다 모르거든요? 호칭만 아는데, (명절에) 가니까 어디 사는지랑 나와 관계가 뭔지만 알아요. 잘 아는 게 없으니까 결혼 얘기밖에 못 하고, 할 말이 없는데 얘기는 해야겠고. 그런 혈연 중심의 문화를 언제쯤 타파할 수 있을까. 꼭 대안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무조건 가족/친인척으로만 구성되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옛날부터 해왔던 것 같아요.
하린 : 그리고 요즘 명절 문화가 바뀌고 있잖아요. 남성도 참여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남자도 해야 해.“라는 말은 싫어요. 시대가 바뀌어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원래 해야 하는 거잖아요.
혜지 : 중요한 건 그것도 말뿐이에요.
나현 : 그게 노동이라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아요.
나영 : 다들 태평한데 나만 계속 표정이 안 좋고.
나현 : 맞아요. 나만 혼자, 나는 의식 안 하려고 하는데 시선은 이미 부엌으로 가 있어요. (일동 웃음&공감) 그리고 엄마랑 고모들 일 하는 것 보면서 마음 졸이고. 이런 문화에 굴복하는 것 같아서 ‘나는 안 할 거야‘하는데 제가 안 하면 엄마가 힘드니까요.
혜지 : 저도 이번에 자동차에서 오빠랑 저랑 싸우니까 엄마가 (혜지에게) 너는 설거지 하지 말라고 엄마가 할 테니까. 왜 너희가 난리냐고 하는데 진짜 분통 터졌어요.
준혁 : 다들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야기하는데 저희 집은 기독교 집안이어서 제사를 안 치르거든요. 집안 여성분들도 일단 제사가 없으니까 노동에서 조금은 자유로우신 편이고, 식사 차리는 것 이외에 나머지는 구분없이 할 사람은 하는 분위기예요. 몇 년 전부터 친가의 경우 1년에 한 번은 가족끼리 여행을 가자고 해서 재작년 추석 때 가족들 다 여행을 갔어요. 그리고 외갓집도 기독교 집안인데 역시 제사를 안 치러서 이제는 외가로 오는 가족들은 며칠 동안 있고, 모든 가족은 마지막 날 회식처럼 자리를 빌려서 해요. 다른 가정들에 비해서는 차별이 조금 덜해서 다행인 것 같아요.
하린 : 저희 집은 특이한 게 외가를 먼저 가요. 외가가 천주교이기 때문에 제사를 안 드려요. 친할머니댁에서는 제사를 드리는데 저도 같이 절하고, 술 따르고 하거든요. 음식도 어느 시기부터는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바뀌었어요. 엄마, 아빠가 요리하고 제사가 끝난 후에 카페로 놀러 가세요. 그러면 저랑 제 남동생이 같이 뒷정리를 하고 깨끗해진 집으로 엄마, 아빠가 돌아오시는 거예요. 이런 형태로 하고 있어요.
야자수 : 저희는 기독교식도 하고 제사도 하는데, 제사 음식을 다 차린 다음에 기독교식으로 했어요. 친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에는 음식을 다 제사상으로 차린 다음에 절도 안 올리고 무조건 기독교식으로 교회에서 하는 것처럼 했어요. 친할머니가 엄청난 신자이셔서 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저는 기독교를 믿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각자 기도를 해주는 시간이 있어서 그때마다 (야자수에게) 같이 믿었으면 좋겠다고 매년 하시는 거예요. 이제 차례는 저희 집에서 제 가족끼리만 지내다 보니까 아예 기독교도 빼고 절만 올려요. 간단하게 하긴 하는데 사실 저도 제사상에 피자 올리고 치킨 올리는 집들이 부러워요. 맛도 있고. (웃음)
하린 : 조상님이 싫어하시는 것 아니에요? 느끼하다- (조상님 성대모사)
나현 : 느끼하시죠? 동치미 한입 드세요.
나영, 준혁 : 배려심... (웃음)
가비 : 저는 엄마가 떡국 한 그릇 먹고 가라고 해서 다녀왔어요. 떡국 한 그릇 먹고 조카가 와서 돈도 없는데 5만 원씩이나 줬어요. 조카가 부끄럽다고 세배도 안 했는데, 세배받고 주려고 20분 동안 기다리다가 그냥 줬어요. (일동 웃음)
“개인적으로 바라는 상상 속의 명절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하린 : 저는 명절이 되게 좋았어가지고 친구들이랑 명절 이야기 잘 안 하는데 이 정도까지인 줄 몰랐어요.
채영 : 어떤 점이 좋았어요?
하린 :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미래얘기도 하고 옛날얘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에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사 음식을 나르는 것은 할머니와 엄마가 많이 하시니까요.
나현 : 저는 현실적인 것은 아니고 아주 멀리 봤을 때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웃음) 다양한 이유로 그 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살면 그게 가족 아닌가?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채식인으로서 명절 음식에 못 먹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
채영 : 저는 어떤 사람과 긴 시간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는 건 있는데요, 한국에서 그렇게 살기 어려울 것 같은 이유는 한국에서의 결혼은 가족의 연결이지, 개인 간의 묶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명절도 괴로운 이유가 생판 모르는 집에 가서 집안일하고, 새로운 가족과 연결되게 해주는 거잖아요. 이들은 내 역사도 맥락도 모르는 상태인데 내가 일방적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런 게 사라져야 이 명절의 고통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린 : 아이패드로 명절 지내도 아무 문제 없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비 : 저는 조카에게 세배받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야자수 : 제사상에 피자와 치킨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혜지 : 저는 혈연관계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가족들이랑 있는 것보다 천연동에서 친구들이랑 있는 게 더 좋아요.
명절 토크는 이렇게 황급히(?) 마무리되었지만, 이후로도 명절 토크에서 파생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설 연휴를 지내며 개인적으로 대면했던 문제들과 느꼈던 감정들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겠지만, 부디 다음 명절에는 우리가 바라는 명절의 모습과 가까워지길 기대합니다. 다음 명절에는 저도 사무실에서 보내볼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