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혐오에 저항하며 부르는 삶의 노래 – 씨씨에게 자유를(Free Cece)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9/11/20
11월 7일 세미나에서 첫 생활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활나누기는 그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이야기하고, 요즘 갖고 있는 고민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낯을 가리는 데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편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눈치를 봤습니다. อิ_อี; 시간이 지나니까 익숙해져서 몇 마디 했는데요. 뻘쭘해서 호다닥 끝낸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 ̆▾ ̆)~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갖고 ‘혐오에 저항하다’ 섹션의 ‘씨씨에게 자유를(Free Cece)’라는 영화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씨씨에게 자유를’은 씨씨가 겪은 흑인 트랜스여성에 대한 혐오와 이에 연대자들이 함께 저항하며 씨씨와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세미나는 1)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2)조사와 처벌 과정에서의 혐오 3)씨씨 가족(어머니)의 태도 4)연대자들의 지지 5)퇴소 이후의 삶이라는 5가지 소주제로 진행됐습니다.
[그림1. 서울인권영화제의 자원활동가들이 세 테이블로 나뉘어 앉아있다. 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활동가의 절반은 노트북과 아이패드 등으로 세미나 자료를 보고 있고, 나머지 절반의 활동가는 앞쪽을 보고 있다.]
1)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흑인 트랜스여성에 대한 혐오라는 맥락 인지 여부에 따라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일상에서 흑인 트랜스여성이 느끼는 차별과 공포를 체감하지 못하는 언론과 검사는 씨씨를 가해자로 지목합니다. 언론은 씨씨를 악의적 존재로 상정하며 자극적인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검사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규정합니다. 흑인 트랜스여성이 혐오 발언과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느꼈을 공포감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했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이와 달리, 씨씨를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씨씨가 흑인 트랜스여성에 대한 차별행위와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정당하게 방어한 것이기에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2) 조사와 처벌 과정에서의 혐오
미국 내에서 흑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됩니다. 흑인인 씨씨 역시 수사 과정에서부터 불리한 위치에 놓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경찰은 상황 파악도 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씨씨에게 수갑을 채웁니다. 게다가 경찰은 씨씨의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장시간 가혹 수사를 진행합니다. 씨씨는 흑인이고 가해자이니 인간적인 존중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이죠. 경찰은 씨씨에게 “당시에 화가 많이 났었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유도심문을 지속합니다. 씨씨가 느꼈을 공포감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고려는 결여된 채, 씨씨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프레임을 만들려 합니다.
씨씨에 대한 폭력은 성별이분법적으로 운영되는 교도소에서도 이어집니다. 생물학적 성에 기반해 여성 교도소 혹은 남성 교도소로 분리되는 수감 시스템 속에서 씨씨는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씨씨가 남성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교도소 내에서 보호를 해준다는 명목으로 독방에 가둡니다. 홀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고통을 안겨주며, 성별이분법적 규범이 강력한 사회에서는 트랜스여성이 설 위치는 없음을 재확인시켜 줍니다. 또한 씨씨를 남성 재소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짧은 반바지 착용 금지, 여성적 행동 규제 등의 규칙을 제시합니다. 남성 재소자들이 씨씨에게 폭력을 가했을 때, 그 폭력의 원인을 씨씨에게 돌리려는 속셈 같았습니다. 그들은 매번 ‘보호’를 내걸지만 결국 추방, 고립, 제한으로써 씨씨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었습니다.
3) 씨씨 가족(어머니)의 태도
씨씨를 트랜스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씨씨의 어머니에게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살아온 방식을 고려해봤을 때 어머니의 태도가 이해되면서도, 다른 한 편 사랑하는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아왔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지식을 접해본 적 없이 수십년을 성별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에게 단시간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존중을 바라는 건 무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씨씨가 자신의 정체성이 지속적으로 부정당하는 공간에서 버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씨씨의 커밍아웃을 단순 일탈로 보고 정상궤도로 돌아오길 바라는 어머니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서야 씨씨의 안전한 주거 공간은 확보될 수 없습니다.
이해와 분노 사이에서 씨씨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와중에, 그럼에도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트랜스젠더에 관해 공부하고 알아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소수자성을 지닌 씨씨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나친 짐이 됩니다. 정작 바뀌어야 할 어머니가 스스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4) 연대자들의 지지
씨씨가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연대자들의 힘이 컸습니다. 씨씨가 감옥에 있는 동안 연대자들은 시위에서 “Free Cece!”를 외치며 지지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씨씨는 홀로 싸움을 이어가지 않을 수 있었고,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존자 곁에서 생존자와 함께 혐오에 저항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씨씨가 활동가로서의 삶을 결정하는 데에 연대자들의 영향이 있었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씨씨는 혐오범죄에 희생된 트랜스젠더들을 기리는 제단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씨씨는 본인이 이전에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아서 발생한 피해들에 책임감을 느끼며 미안한 마음을 보였습니다. 연대자들과 함께하며 자신이 생존할 수 있었듯, 앞으로 다른 트랜스젠더의 생존을 위해 힘쓰겠다는 씨씨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5) 퇴소 이후의 삶
퇴소 이후에 씨씨는 당차게 활동가로 살아갑니다. 인종차별적이고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사회에서 생존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구직 과정에서의 트랜스젠더 차별 철폐를 주제로 연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흔히 우리는 용감하게 사회활동 하는 대표적인 활동가들에게서 힘을 얻곤 합니다. 그러나 활동가들이 씩씩하고 대담해 보인다고 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언제나 건강할 것이라 상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표로 거론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거나 혼자 헤쳐 나가도록 물러나 있지 않고, 함께 보듬어주며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씨씨가 트랜스젠더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과정도 조명해 보았습니다. 씨씨는 노년 트랜스여성을 만나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공유하기도 하고, 트랜스젠더 희생자들을 기리는 재단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지지자들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들 사이에서 자신과 이어지는 끈을 발견해갑니다. 씨씨의 몸에 새겨진 불사조 문신이 보여주듯, 앞으로 씨씨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환대하는 사람들과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더 행복하게 삶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전 세미나부터 이번 세미나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사람이 의식주만 갖춰지면 살 수 있어? 나다운 삶에 대한 고민, 자신을 표현할 수단과 시간의 존재도 중요하지 않나? 의식주가 있어도 이런 가치들을 수호할 수 없으면 사람은 병들지 않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답게 살고 나를 표현하다가 때로는 의식주를 빼앗기기도 하고 생명까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겠구나. 나다워지는 과정, 나답게 사는 과정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답게 사는 것의 무게감이 누군가에게는 더 버겁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버거움이 덜어질 수 있도록, 제가 함께 할 수 있을 때 언제든 연대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버거울 때 누군가에게 함께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함께 혐오에 저항한다면 우리는 즐겁게 삶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