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가려져왔던 삶의 장면들이 담긴 공간 - <이태원>의 개봉을 앞두고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9/12/04
사실 이태원은 저에게 그리 익숙한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는 일산에서 이태원까지 가려면 3호선을 타고 하염없이 간 뒤에 약수역에서 6호선을 타고도 더 가야 하거든요. 종종 이태원 가서 놀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생각이 드는 경우보다 더 적습니다. 맥주 한 잔에 팔천 원, 칵테일 한 잔에 만오천 원을 감당하고 싶은 마음역시 잘 생기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22회 “삶의 공간: 지키다” 섹션의 상영작 <이태원>을 만난 뒤로 이태원은 저에게 각별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올겨울, <이태원>이 극장에서 정식 개봉을 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좋은 영화가 이제야, 라는 마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2017년 6월로부터는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으니까요. 개봉이 늦어진 만큼, 이 영화를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울림에서는 <이태원>의 기억을 잠깐 되살려보려 해요.
[그림1. 해질녘 어둑어둑한 이태원의 골목. 행인은 없고 낡은 건물과 전신주 몇 개가 서 있다. 왼편에는 삼숙의 가게 ‘그랜드 올 오프리’의 네온사인이 붉게 빛나고 있다.]
<이태원>은 제목 그대로 이태원에 대한 영화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태원에서 수십 년째 삶을 이어오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품고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삼숙, 나키,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태원에 흘러들어왔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태원에서 긴 세월을 보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태원에 남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닮은 듯 달라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미군을 상대로 한 클럽에서 노동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태원에는 ‘후커힐(Hooker Hill)’이라고 불리는 골목이 있습니다. 미군을 비롯한 외국인 남성을 상대로 하는 작은 클럽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에요. 이러한 클럽들이 생겨난 것은 해방 이후 용산에 미군 기지가 자리를 잡게 된 이후라고 합니다. 새벽 여섯 시와 저녁 여섯 시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밤새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가득한 곳에서 쉽게 상상하기 힘든 긴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지요.
그 역사와 사연을 지탱해 온 이들은 삼숙, 나키, 영화와 같은 여성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태원에서 맥주를 마시고 재즈를 듣고 칵테일을 들고 몸을 흐느적대면서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습니다. 이들은 세계화가 공허한 유행을 타기 전에 이미 미국의 문화를 먼저 접하고 들여온 이들이기도 합니다. 후커힐에서 일을 하며 달러를 벌어들이자 “애국자”로 치켜세워졌던 적도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양갈보’라는 말을 들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 모두 이들이 선택한 장면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너머로 이야기될 수 있는 삶과 그 장면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왜 이야기되지 않는 것일까요? 왜 가려지는 것일까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여 이런저런 대안공간을 마련하려 하는 청년들도 삼숙, 나키, 영화와는 닿을 곳이 없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누가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개봉(12월 6일)을 앞둔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요. 저는 다만 <이태원>을 보며 이 공간에 담긴 삶들에 놀랐고, 이 삶들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다시 한 번 놀랐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영화제를 준비하며 이 영화를 최소한 다섯 번은 봤을 텐데, 볼 때마다 보이는 삶의 장면들이 다 달랐어요. 이 공간에서 어떤 것을 걷어내고 어떤 것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은 영화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려한 밤거리와 우후죽순 생겨나는 값비싼 고급 레스토랑, 재개발 이야기로 치솟는 집값... 이태원에 대한 기존의 그 어떤 긍정적인 담론도 비판적인 담론도 담아내지 못했던, 혹은 담아내지 않았던 삶들을 극장에서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