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편지) 편지를 보글보글하게 끓여서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01/29
안녕하세요 스입니다. 이제는 스님이라는 이름이 또 다른 이름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지금은 어느 자리에나 서슴없이 앉을 수 있구요, 그리고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서 두유도 꺼내먹을 수 있습니당 :)
제가 이렇게 천천히 하나씩 도전할 수 있던 이유는 여기는 저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여태까지 만나 온 대부분의 관계 속에는 항상 누군가에 대한 기대가 당연하게 존재했던 것 같아요. 물론 기대는 관심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사실 애초에 기대라는건 상대방을 위한게 아닌 기대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기대가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또 누군가는 기대를 받지 못한 채 소외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우연한 기회로 짧은 시간 안에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후 이불 밖으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어요. 더이상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졌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새로운 곳으로 저를 보냈어요. 그리고 저는 감사하게도 여기서 조금씩 적응하면서 다시 관계에 대한 용기를 얻어가는 중입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만두고 싶으면 나가도 괜찮고, 잠수타고 싶으면 잠수타도 괜찮은 것들이었는데, 그동안 쓸데없이 너무 많이 죄송해하고 살았던것 같아요. 저는 이제 절대로 죄송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부담이 되는 관계도 애써 노력하지 않을 거예요. 외면하고 싶으면 시원하게 피해버려도 좋을 것 같아요. 다들 모르겠지만 저는 매 시간마다 점점 이런 용기를 얻어갑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속에서 저는요, 딱 여기서 같이 있으면 이야기꽃을 보글보글하게 피울 수 있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색하지만 낯은 가리지 않구요, 편안하지만 긴장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기대를 피해서 온 곳에서 자꾸만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하나 둘씩 하게되네요. 마치 이런. "나중에는 저도 점점 더 뜨거워져서 함께 빵댕이를 흔들 수 있을까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