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편지를 부칩니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10/31
날이 추워지고 있어요. 다들 따스하게 잘 챙겨입고 다니시나요? 오늘 아침에는 담배를 피우려 베란다에 나가 보니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차가워 ‘감기에 걸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잠시 생각했답니다. 영화제는 하반기를 맞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그동안 밀린 이야기,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잘 나누고 있답니다.
한편 저는 요즘 저와 화해하고, 저를 살리는 일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요. 왠지 아침에 일어나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면 눈물이 날 것만 같고, 조금 후에는 ‘죽고 싶다’ 아니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온몸을 가득 채우거든요. 그러면 잠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다정함을 나누면 제가 삶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가 떠오르고,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겠다는 마음이 생겨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마음들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몸으로 그 기운들이 새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울컥하고, 구역감이 들고, 어지럽고. 하지만 분명히 ‘죽음’에 대한 마음으로 생긴 어떤 것들이 제 삶을 변화시키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다정하게 구는 데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고맙다는 말도 많이 하지 않았고, 제가 친구들에게 받고 있는 위로들에 대해서도 마음을 자주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하고 그걸 모두 통제하려고 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있었어요. 하지만 오직 ‘저를 살리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꾸만 ‘죽음’이 제 머리를 떠돌면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먼저,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나와 친구 해 줘서 고마워.’ ‘오늘 나 데리러 와 줘서 고마워.’ ‘걱정해 줘서 고마워.’ ‘고마워. 고맙고 그냥 너무 고마워.’
그리고 순간들의 색감을 느끼게 되었어요. 좋은 사람들과 고마운 시간을 보낼 때 제 시간의 색이 달라진다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침대에 누워 있으면 공기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 노래를 들으며 침대에 누우면 몸이 얼마나 긴장해 있었고 또 편안해지는지. 샤워를 할 때 따뜻한 물이 제 몸을 흐르면 그 증기를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에요.
저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시작이 된 것 같아요. 물론 계속해서 저는 무력감에 빠지고 자꾸만 가라앉지만, 매번 그 구덩이에서 저를 건져내며 되뇌는 것들이 생겨 갑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 번 더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내고 싶네요.
이 글을 쓰며 저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숨비’라는 이름입니다. 숨비란 원래는 해녀들이 물 속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해수면으로 올라올 때 내뱉는 숨소리를 부르는 말이에요. 저는 해녀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 그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해 이 이름을 써도 괜찮은지 조금 고민이 들지만, 그것이 요즘의 제 삶과 제가 지키려 하는 가치들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내 보았습니다.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꾹 참으면서도, 해수면에서 숨을 내뱉으면서도 계속 삶을 살아가고, 따뜻함들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날이 너무 춥지만 모두 따뜻하게 입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숨을 참고 내쉬며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