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방

퀴어의 방

퀴어의 방의 스틸사진
감독
권아람
상영시간
29'
제작국가
한국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2018
색채
컬러
포맷
HD
화면비율
16:9
자막
Korean
배급

상영정보

존재의 방식
국내 상영작
2018/06/07(목) 13:00
다목적홀
2018/06/09(토) 18:10
마로니에공원

시놉시스

첫 번째 방.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없는 곳을 찾다가 오게 된 “거부하우스”. 이곳에서 마침내 ‘나’를 봐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두 번째 방. 벽 한가득 붙어 있는 동물 사진과 포스터, 그리고 직접 쓴 글귀들. 붉은 생고기가 놓인 냉장고 한 칸에 자리 잡은 ‘비건푸드’. 가족 안에서 나의 ‘비정상성’을 지켜주는 것들이다. 세 번째 방은 이태원에 있다.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가 ‘나’를 위협하지만, 삶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 안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낀다. 마지막 방. 애인을 따라 그녀가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동거인들은 우리가 레즈비언인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집을 둘러싼 퀴어 아우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준다. 내가 ‘나’로 온전해지는 곳, 사회의 ‘정상성’에 맞서는 여기는, “퀴어의 방”이다.

 

감독소개

권아람

권아람

미디액트 독립다큐멘터리 과정을 수료하고, 대학 내 여성주의자들의 활동을 다룬 <F word>를 연출했다. MTF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과정을 기록한 <2의 증명>(2013)을 공동연출했고, 기지촌 이태원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공간을 담은 <이태원>(2016)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태국의 일본군 위안소 공간들을 기록한 <463 - Poem of the lost>(2018)를 연출했다.

작품해설

집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와 가족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친 몸을 잠시 뉘러 들어온 ‘집’은 다시 투쟁의 장소가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매번 온 힘을 끌어모아 이야기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가족이 만든 울타리에서 탈출한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내 방문을 다시 울타리 삼아 숨을 쉴 만한 공간을 채우기도 한다. 나를 부정하는 부모가 아닌 서로 공유하는 삶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 그 가족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상상하며 이 공간을 채울 사람을 기다린다. 이렇게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된 네 사람은 저마다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퀴어인 내게, 집은 어떤 공간일까. 퀴어인 내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집을 구성하는 가족 구성원들은 퀴어인 나를 참을 수 없어 한다. 왜 평범하게 살지 않냐고, 그렇게 살면 내가 죽어버리겠다는 말로 내 존재를 위협한다. 퀴어인 나를 드러낼 수 없는 집에서 나는 미래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렇게 집에서나 집 밖에서나, 퀴어인 내가 온전히 몸을 뉠 곳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원가족으로 부터 탈출한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집에서 ‘탈주’한다. 

내 정체성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퀴어정체성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나를 퀴어라 명명함으로 온전한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퀴어정체성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퀴어라는 것을 매번 새롭게 이야기해야 하거나 숨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망에 있는 나를 상상한다. 나도 모르게 정상성에 끌려다녀 지친 나를 다시 숨 쉬게 할 수 있는 곳. 이런 내 심호흡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상상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퀴어로 남을 수 있는 ‘퀴어의 방’을 만든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내가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새로운 ‘집’에 나를 뉘고 싶다.

인권해설

‘집’은 혼인·출산을 통해 구성된 가족들이 세대를 재생산하는 장소로서 그 사회적 중요성이 부여된다. 그래서 주택 정책은 기본적으로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그에 따른 전형적 생애주기를 전제한다. 계급 양극화, 청년 실업, 고령화 같은 사회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청년, 노인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주택 정책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문제가 애초에 노동, 보건복지 등 ‘정상가족’을 모델로 운영되는 사회적 재생산 구조의 참패를 방증한다는 것을 쉽게 잊고 만다. 다수의 주거 취약층을 소수자화하고, 이들에게 주택공급, 임대, 대출 제도의 문을 부분적으로만 개방한다. 

개인에게 ‘집’은 소유물이나 자산 증식 수단, 정착과 휴식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 집에서 정착하고 휴식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는 가구마다 다르며, 한 가구 내에서도 구성원들마다 다른 처지에 놓인다. ‘주부’나 ‘엄마’에게 집은 언제나 일터였다. ‘가족’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집은 구성원 각각의 정체성과 욕망을 협상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TV, PC, 식탁과 의자 등 물리적인 공간 배치뿐만 아니라, 밥을 먹고 TV를 보고 잠을 자야 하는 시간 규율, 누군가 방문을 함부로 열 수는 있지만 맘대로 잠가서는 안되는 룰,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지 등, 이미 이런 사소한 룰들까지도 힘의 불평등 위에서 결정된다. 여성,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집에서 협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퀴어는 어떠한가? 퀴어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이 더 어렵고 고되다. 퀴어퍼레이드에서 가져온 스티커나 무지개 깃발을 둘 곳이 마땅찮다. 퀴어로서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느냐를 넘어 퀴어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이 인정될 수 있는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퀴어는 집에서 ‘존재’하기 어렵다. <퀴어의 방>은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여정과 변화이다. <퀴어의 방>의 주인공들은 퀴어 정체성뿐만 아니라 입시거부, 흡연, 동물권 운동과 비거니즘 등의 면면이 원가족 안에서 불화한다는 점을 깨닫고, 가족을 통해 재생산되는 것이 ‘정상성’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그래서 소수자 주거권 문제는 ‘가족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물질적 집이 아니라 ‘정상성을 재생산하는 공간으로서의 가족과 집’, 즉 권력과 차별의 문제를 돌아보도록 요청한다.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2006~), ‘소수자 주거권 확보를 위한 틈새 없는 주거권 만들기 모임’(2010~) 등은 소수자, 반차별, 가족과 정책의 문제를 다뤄왔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퀴어타운 프로젝트>(2011), 가족구성권연구모임과 언니네트워크의 <정상가족 관람불가展>(2012),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2013~) 등의 프로젝트는 성소수자 공동체 상상을 위한 자원들을 연결해왔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2015~)의 일시 쉼터, 함께주택협동조합의 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하우스’ 등 사적(私的) 복지를 넘는 퀴어 주거의 가능성은 여전히 실험 중이다.

더지(언니네트워크)

스틸컷

퀴어의 방 스틸컷1
퀴어의 방 스틸컷2
퀴어의 방 스틸컷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