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6호] (활동펼치기/상영작소개) 폐막작<탐욕의 제국> 모니터 후 자원활동가 대화 + 인권해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4/05/18
(활동펼치기)
폐막작<탐욕의제국> 반빈곤반개발노동팀의 대화
시놉시스
모두가 부러워했던 꿈의 직장 그 곳에서 나는 백혈병을 얻었다… 근로복지공단 앞은 오늘도 변함없이 소란스럽다. 영정사진을 든 채 “노동자의 죽음은 중요하지 않습니까?”라며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과 그들을 문 앞에서 막아서는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갑작스레 발병한 백혈병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던 황유미, 뇌종양 수술의 후유증으로 눈물을 흘리지도, 말을 하지도, 걷지도 못하게 된 한혜경, 1년 남은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슴에 담겠다며 아픈 몸을 일으키는 이윤경, 동료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유방암을 선고 받은 박민숙, 고졸 학력으로 대기업에 입사한다는 것에 마음이 부풀었던 딸을 떠나 내야 했던 황상기, 두 아이를 위해 남편의 죽음을 반드시 규명하겠다는 정애정… 그들은 아직 코앞에 드리운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던 직장이었다. 먼지 하나 없는 방, 모두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그 곳은 ‘미지의 세계’ 같았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화장실 갈 틈도 없이 기계를 돌려야 했지만 ‘성과급 1000%’ 앞에서 불평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것이 죄였을까.
폐막작<탐욕의제국>모니터 후 반빈곤반개발노동팀의 대화
남솔 - 영화를 보면서 분노가 일었다. 영화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방진복이 노동자의 신체를 보호해주는 용도가 아니라 제품에 불순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기계처럼 일했고 그곳에서 인권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도 공장에서는 이 사실을 모른 채(또는 돈을 위해) 여전히 일하고 있을 노동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고, 무엇보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누구든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인근 - 경제 논리로만 모든 일이 결정되는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을 다시 확인한 자리였다. ‘삼성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돌아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이 우리나라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임은 틀림없지만,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이 없으면 기업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업 윤리를 찾았으면 한다.
박규민 - 피해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에 맞서 저항하는 노조가 없다는 문제는 대부분 공통적으로 고민해왔던 문제들이 아닐까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왜 여성 노동자들이어야만 하는가? 이들이 반도체 공장에서 나쁜 환경에서 근무하여야만 하는가? 공장 내부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영화 속 장면 중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숲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하지만 윤정씨와 혜경씨의 모습을 통해 어떤 상징적 의미로써 눈물과 피해 노동자들이 가슴앓으며 표현하지 못했던 무언가 전달하려고 한 인상을 받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기사나 리뷰들을 접하다 보면 영화 속 내용이 불친절하거나 사건 전개의 흐름이 단조롭게 끊어졌다는 이야기들을 접하곤 하였습니다. 영화의 작품 완성도나 사건 전개 혹은 말해주지 않은 것들과 불친절함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수 있지만 영화 속 장면에 나오지 못했던 피해 노동자들이 처한 삶의 환경이 어떠한지 관찰하고 공감하며 어떻게 그들을 지지하여 힘을 실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그들을 돕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박미정 -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속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을 최고라 대변해주는 무수한 타이틀은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온 누군가의 땀으로 일궈진 것임을 진정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관련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무조건 막아내고, 밀어내기만 하는 모습들을 접하면서 저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최고라 하는 기업의 실체인가 하는 생각에 얼굴이 붉혀졌다. 소통을 강조하는 정부 아래, 진정 소통이란 없나 보다. 탐욕의 제국, 그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권아람 - 장면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과 진실을 밝히려는 몸짓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여러 인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속에 얽혀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종종 마음을 누를 때가 있다. 탐욕의 제국 이야기도 한국사회 안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체가 얼마나 녹록치 않은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 개인이 이러한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마음이 무겁다. 구조 안에서 한사람, 한사람의 무게와 목소리를 기억하며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영화였다.
윤혜솔 - 보는 내내 찜찜한 기분을 씻을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보다는 그들의 극단적 자본주의 논리와 면죄부를 목격한 영화였습니다. 이 갈등은 거대한 집단에 맞서서, 바위에 날계란 치듯,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진정한 승자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 명백히 보이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탐욕의 제국'으로부터 빼앗긴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상받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응원하겠습니다.
황은미 - ‘열심히 일해서 우리 가족들이랑 잘 살아봐야지’ ‘조금 일이 힘들어도 참으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라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성실히 일했던 평범한 사람들. 그들의 꿈과 에너지들을 모조리 흡수하고, 아프고 지친 노동자들을 마치 나사 하나 바꾸듯이 내쫓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탐욕을 위해 몸집을 키워가는 삼성. 그리고 자신과 다를 게 없이 평범했던 사람들의 부서진 삶을 보고도 나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며, 대기업이라는 허상의 믿음과 돈을 벌어 잘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면접장을 찾는 사회초년생들. 이렇게 큰 순환과정 속에서 삼성에게만 선택할 수 있고 이익이 돌아가는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을 느낀다. 평범하게 꿈을 꾸며 젊음과 건강을 삼성에게 다 준 사람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과 어디서부터 이 흐름을 끊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이 흐름을 거꾸로 바꿀 수 있지에 대한 걱정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김인주 -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모든 인간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오직 자본만이 생명력을 얻는다.”는 칼 마르크스의 말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습니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관련 회사의 직원들,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움마저도 빼앗기는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을 거대 자본. 자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가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껴졌던 영화 <탐욕의 제국>이었습니다.
안가영 - 영화를 보며 삼성보다 그 기업을 벌하지 않고 감싸주는 정부에 대해 화가 났다. 어떤 업종이던 업무의 영향으로 개인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당연히 이익추구 목적의 기업에서는 이 문제를 인정하고 손해배상 하는 것이 싫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한 기업에서 끔찍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지 않는 것은 비정상적이지 않은가. 정부는 개인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 책임을 다할 때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질 것이고 기업의 윤리성이 높아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 안가영
인권해설
우리, 일상을 얘기해요.
반올림 활동가 : 오랜만에 만나 반가우셔서 농담 주고받으시는데, 어머님, 아버님, 지금 곧 기자회견 시작이에요. 자자, 표정 관리 하셔요~
7년이나 오래 버텨온 힘이 이거였을까. 웃고 농담하고 안부를 묻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서늘한 집회나 기자회견장에서 만나야 하는 우리에게 “밥은 챙겨먹고 다녀요? 대충~ 아이는 몇 학년 이예요? 1학년, 우리 딸 영어 요즘 영어 배운다고 난리네~ 딸 결혼식이 언제라고? 꽃 피고 좋네~” 이런 일상을 나누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민숙언니(박민숙,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 7년 근무, 유방암)도 분명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깔깔거리며 즐거워했을 꺼다.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설렘에 누구 못지않게 한껏 멋을 부렸었을 꺼다. 혜경 씨(한혜경, 뇌종양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 6년 근무, 뇌종양)도 예전 사진을 보면 제법 통통하고 발랄했더라. 지금도 노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고, 웃음이 많고, 신나면 휠체어에서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추는데... 윤정 씨(이윤정,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6년 근무, 뇌종양)도 몸이 ‘팅팅’ 부어서도 “남들 가본 데, 청계천, 인사동 가자”며 성화였단다.
창호 씨(송창호, 삼성 삼성반도체 온양공장는 6년 근무, 악성림프종)는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진 아빠 모습에 낯설어하던 아들이 가장 슬펐다고 한다. 희수 씨는 “고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민숙 씨는 동료 소식을 ”누가 무슨 병이래, 죽었대” 라고 전해 듣고. 삼성으로부터 사과, 보상, 재방방지대책 마련을 약속 받는 것 말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상성의 복원이 아닐지. <탐욕의 제국> 홍리경 감독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던 이들의 꿈이 먼지처럼 사라진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반올림과 반올림을 응원하는 이들이 해야 할 것은, 클린룸에 들어선 뒤 달라진 그들의 삶, 사라진 일상을 복원해가는 일이 아닐까. 사라져간 안타까운 생명과 건강 그리고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을 챙기면서도 남은 자들의 일상과 행복도 하나씩 나누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소중한 일상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세상이 되어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권영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