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8호](활동펼치기/상영작 소개) <개막작> 잠들지 못하는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5/05/15
잠들지 못하는
[작품정보]
72분/헬렌 시몬/독일/다큐멘터리/2014/컬러
주인공 티나는 친족성폭력의 피해자다. 아버지에게 지속적 성폭행을 당했고, 그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런데 그녀는 또한 친족성폭력의 2차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의 딸 역시 할아버지에게 어릴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고를 겪었음에도 티나는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처지를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다. 자신이 이미 한 번 당했음에도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럼에도 가족을 자기 손으로 파괴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 여기에 어느새 자신과 딸을 같은 성폭력 피해자로써 동일시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가지 격한 감정들에 시달렸던 티나. 그런 그가 드디어 카메라 앞에 섰다. 티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면, 왜 수십 년 동안이나 티나는 그렇게 감정에 시달려야 했을까.
[자원활동가들의 영화 이야기]
선훈: 친족성폭력만큼 위계가 확실히 드러난 성폭력도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버지',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에겐 너무도 큰 존재다. 잘 알기 때문에 친숙하지만, 동시에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상대방이 '높다'는 게 명확히 나타나는 관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 티나와 플로는 성폭력을 당하면서 그런 걸 느끼지 않았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말은 여기서 참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입에 담을 수 없는 짓을 해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나지막이 말하면 그만인, 그래서 더욱 은밀하고 무서운. 그렇다면 그것을 두 번이나 보고 겪어야 했던 티나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지윤: 영화는 서두르지 않는다. '티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잊고싶은 기억을 다시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피해생존자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하게 한다. 집 조차 편안할 수 없는, 고통의 공간이 되어버린 친족성폭력 피해자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 이토록 잔인한 말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