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우리는 분리장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해야 합니까?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2/08
우리는 분리장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해야 합니까?
(↑21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핑크워싱>)
토론토 자긍심 축제는 북미에서 가장 큰 성소수자 행사 중 하나로 꼽힙니다. 33일에 걸친 축하행사, 10일간의 자긍심 주간, 3일 동안의 행진으로 꾸려지는 이 행사는 그러나 시장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흑인을 포함한 비백인이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요. 2016년도 토론토 자긍심 축제에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토론토 지부(BLM-TO)’가 명예 손님 자격으로 초청되었을 때 의아하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들려왔던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BLM 오클랜드 지부가 초청을 거부한 것과는 달리 토론토 지부인 BLM-TO는 초청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행진 중간에 멈추어 서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없앨 것을 요구하는 점거시위를 30분가량 펼쳤는데요. 취약한 위치에 놓인 집단, 대표적으로 흑인, 여성, 트랜스젠더, 청소년, 장애인, 캐나다 선주민을 위한 토론토 자긍심 조직위원회(PT)의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었습니다.
이 무렵 PT는 올랜도 사건을 이유로 행진에 경찰 병력을 대폭 늘렸지요. 올랜도 사건이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 혐오를 일으키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야기하는 억압과 고통의 자리들을 퀴어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서 희석시키려는 경찰의 핑크워싱 전략이었던 것인데요. BLM-TO의 점거시위는 PT와 토론토 경찰이 몇몇 LGBT 당사자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을 통해 흑인 커뮤니티와 경찰이 맺는 형편없는 관계를 삭제하는 일에 저항하는 기획이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핑크워싱>은 브랜드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모습과 보여주지 않는 모습 사이를 교차하고 있습니다. 시애틀의 LGBT 위원회와 친이스라엘 LGBT 단체인 스탠드위드어스의 문화교류 행사를 방해한 경험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표현의 자유와 안티세미티즘 논쟁의 한 가운데에 서 있게 됩니다.
가령 ‘나는 이스라엘 국민입니다.’라고 할 때 이것은 표현의 자유로 존중받아야 할까요? 혹은 퀴어 프랜들리 시오니스트와 연대하는 것은 정치색을 배제한 문화 교류인가요? 대화를 요청하며 내미는 손을 뿌리치는 것은 배신이거나 폭력이거나 중립적이지 못한 행동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스탠드위드어스와의 문화교류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시애틀 LGBT 위원회에서 셀마는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나는 여기 존재하고 동성애자이며 시애틀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입니다. 행사를 취소하는 것은 이 행사에 동원되는 인종주의 선전술과 손잡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 같은 팔레스타인인 퀴어에게 가해지는 전쟁범죄를 퀴어 커뮤니티를 동원해 은폐하려는 계략에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셀마의 발언에 느낀 바가 컸던 위원회는 스탠드위드어스와의 문화교류행사를 하루 전에 취소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엄청난 역풍을 맞았지요. 실망스럽다거나, 나치즘이라거나, 해코지를 하겠다는 협박성 편지가 쇄도했습니다. 위원회는 자신들의 섣부른 결정을 사과하고 내부적으로 성찰하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브랜드 이스라엘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많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중동지역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퀴어도 군대에 갈 수 있고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알고 있지요. 이스라엘 국가의 이미지 세탁에 퀴어 정체성을 끌어다 놓는 핑크워싱 전략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참 가슴 아픈 전략이기도 합니다. 퀴어 정체성은 국가적 전략에 의해 투박하게 재단되고 이용되고 그리고 곧 폐기됩니다. 한 예로 셀마는 이스라엘에서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퀴어이기 이전에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은 이와 같은 대응에 빨려 들어가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인은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반대하면 나치즘이라고 비난받습니다. 반이스라엘이 반유대주의의 프레임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BDS운동은 정치적이지 않은 의제에 정치색을 덧칠하는 것이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를 거부하고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아닙니다. BDS운동은 불균형한 권력관계 속에서 대화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세우는 전략입니다. 분리장벽을 사이에 두고서는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분리장벽 너머에서 팔레스타인인 퀴어로서의 존재를 비가시화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표현의 자유란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5년, 177개의 사회단체가 남아공사례를 참고하여 전 지구적으로 연대하는 보이콧 운동을 제안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입니다. 이스라엘 상품을 불매하고 이스라엘 점령으로 이득을 보는 회사에 철수를 요구하고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지키도록 압력을 넣는 겁니다. 브랜드 이스라엘에 맞서는 아주 효과적인 운동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함께하고 싶다면 동참하세요. 서울인권영화제도 함께하고 있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20회 상영작 <핑크워싱>은 신청을 통해 각 공동체 단위에서 상영지원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문의: hrffseoul@gmail.com
더 읽을거리:
[21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핑크워싱> http://hrffseoul.org/ko/film/1952
[서울인권영화제 BDS운동 선언문] http://hrffseoul.org/ko/article/2112
[주간 워커스에 실린 서울인권영화제 BDS기사] http://workers-zine.net/23154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