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나는 사실 답을 알아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2/22
중학교 때 본 진로적성검사에서 법조인이 나왔을 때 그렇게나 기뻐했던 나의 부모님은 내가 인권변호사를 꿈꾸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거야. 성령이 충만하다며 주일마다 나를 교회로 데려갔던 고모도 내가 앞장서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고등학교 때 장학금을 지원해줬던 유대인단체는 내가 BDS를 선언한 곳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배아파할까.
사람들은 내게 말하곤 해. 자기밖에 모르는 애가 왜 갑자기 인권운동한다고 난리냐고. 너 지금은 그렇게 인권, 인권해도 나중에는 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 거 못한다고. 허긴 나도 가끔 지금 나의 모습에 놀랄 때가 있는 걸.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인권은 ‘나’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고 사는 건 참 쉬웠어. 하지만 그것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 삶을 살아내려니 너무 힘들더라. 솔직히 내 부족함과 한계들이 드러날 때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다 그만두고 도망치고 포기하고 싶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늘어갈 때마다 나는 인권운동을 선택한 그때의 나에게 물어봐. 정말 이 길이 이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야 될 길이야? 라고.
하지만 나는 사실 답을 알아. 나 혼자 행복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 누군가의 불행을 딛고 서있는 삶은 절대 행복할 수 없더라고. 그래서 힘이 필요한 누군가의 힘이 되어 주리라 다짐했었어. 그래서 이번 주 목요일도, 다음 주 목요일도 나는 홍대 정문 옆 좁은 골목을 열심히 오를 거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