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안녕하세요! 자원활동가 윤리입니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2/22
안녕하세요! 자원활동가 윤리입니다.
저는 요즘 한참 제 인생에서 이처럼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나 생각하곤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설렁설렁, 되는대로 사는 편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늘 하는 것에 비해 너무 좋은 결과들을 얻고는 해서 저는 제가 꽤나 잘난 사람인 줄 알곤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여성주의와 인권담론을 접하고 난 후, 세상에, 저는 제가 그리 멋진 사람이 아닌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인권과 차별을 모르고 살아오던 동안에 전 의식한 채로, 혹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차별을 당하고 차별을 해오던 것이었어요. 그 때의 충격이란……. 나는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아주 상처를 주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 순간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정말이지 누군가의 존재에 조금이라도 덜 상처 주며 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덜 가해하며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당연한 것들을 하나씩 고민해야 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예전의 나와 같이 누군가들을 가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생각해야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기로 했는지, 그리고 왜 당신들이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는지 수없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이 지침과 힘듦이 “인권을 말하기 때문에”라고 착각하곤 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이걸 다 모르고 살았더라면, 내가 하는 온갖 가해들을 모르고 살았더라면, 그럼 난 예전처럼 내가 좋은 사람인 줄 굳게 믿으며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어요! 난 조금 덜 행복하더라도 그 때의 내 모습보다 지금의 내 모습이 좋았고, 내 삶에서 더 아름다운 가치들을 알 수 있었고, 세상이 밉고 사람이 미워지는 와중에도 내 옆에는 함께 세상을 미워해주고 밉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변화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바뀌지 않으려 하는 세상과 사회라는 것을, 차별 받고 삭제 당하는 이들을 그 상태 그대로 두게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 세상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든 순간들이 계속 찾아올지도 몰라요. 사실 아직도 가끔씩 우울함에 견디기 힘든 날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매 순간 조금씩 덜 가해하며 살아가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이 순간도 세상에서 삭제되는 나를 위해, 친구를 위해,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그러니 여러분 모두, 지쳐도 좋으니 우리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는 이 순간 이미 치열하고 아름답게 살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