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엄마는 내가 누군지 알고싶지 않아?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3/22
엄마는 내가 누군지 알고싶지 않아?
엄마, 안녕.
엄마는 내가 누군지 모를 거야. 내가 가장 어렸을 때, 아마도 엄마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겠지. 그러나 이제 나는 엄마가 모르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어. 그건 남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단 한 명만이 부르는 이름이기도, 혹은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이기도 해.
엄마에게 내 이름을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했어. 사실 내 이름들을 말해야할지 고민했지. 나는 엄마를 좋아하잖아.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꽃을 보고, 같이 계절을 세는 사람이잖아. 그런 엄마에게 엄마가 모르는 내 이름이 있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렇지만 이름을 말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 엄마, 아빠가 내게 준 이름에 엄마의 소망과 사랑이 들어있는 것처럼 내가 내게 붙인 이름에도 나의 의지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름 두 글자가 설명하는 것들과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 나는 나의 첫 이름이 좋아. 그리고 그 이후로 주어진 이름들 때문에도 행복하고 점점 더 사는 게 좋아져. 사람들이 저마다 아는 이름으로 나를 부를 때 나는 나의 존재를 더욱 확신해.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가 엄마를 바라봤듯이, 엄마와 함께 있지 않는 곳에서도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어. 엄마가 모르는 이름으로 불릴 때, 가끔 엄마가 생각나. 엄마가 짓지 않은 이름으로 엄마에게 불릴 수 있을까.
엄마, 엄마에게도 내가 모르는 이름이 있을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소망과 사랑이 담긴 이름, 그것이 지어지기 위해 쓰여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엄마 스스로 결정하며 살았기에, 엄마에게도 내가 모르는 이름이 있을까.
사랑하는 엄마, 나는 언젠가 엄마에게 내 이름들을 말할 거야. 그리고 엄마가 원한다면, 엄마의 이름들을 불러주고 싶어. 그 이름들이 가진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아?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