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불법이 불법이 되는 순간

(함께 나눠요) 불법이 불법이 되는 순간

불법이 불법이 되는 순간

 

 <나는 오류입니까: 칠드런404> 스틸컷

20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인 <나는 오류입니까: 칠드런404>는 2013년 6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블라디미르 푸틴이 18세 미만 청소년의 비전통적 성적 관계의 선전을 금지한 것인데요. 이 법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힘이 없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지혜가 없는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법이 발표되고 난 뒤 청소년 LGBT 네트워크인 ‘칠드런404’가 생겼습니다. ‘칠드런404’는 법이 발표한 동성애 금지에 대해 저항하는 운동을 합니다. 성소수자로 정체화한 이들이 자신의 눈이나 얼굴을 피켓으로 가리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인데요.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만 했던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공표하는 프로젝트였던 셈입니다.

정부는 청소년에게 보호가 필요하다며 쉽게 그들을 약자의 위치로 배치합니다. 동어반복으로 다시 이야기하자면, 청소년에게도 의견이 있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 표현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통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청소년의 동성애 선전 금지로 나타난 것도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겁니다. 정부가 동성애는 전염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든 몰랐든, 청소년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믿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언제든 싫증을 내고 유행에 따라 벗어던질 수도 있다고요.

 

다큐멘터리 안에서 한 청소년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광고물이에요”

이 장면을 보며 한국의 2017년 4월 25일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을 떠올렸습니다.

 2017년 04월 25일 JTBC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

“동성애 반대한다.”

이 발언을 듣고 저는 무척이나 슬프고 또 아팠습니다. 

나의 성적 지향에 대해서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야 하는 것은 참 슬픈 일이지요. 더더군다나 나의 성적 지향은 자유롭게 표현되는 것인데 그것을 선전 한다고 말할 때 지워지는 나만의 색깔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또한 참 슬픈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이 약해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약자로 배치되는 것인지를 따져보게 되는 것입니다. 동성애가 비정상적이어서 불법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불법이 되었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라고 위치 지어지는 것인지 따져보게 되는 것이지요.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 내가 나의 호불호를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얼핏 맞는 말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슬플까. 왜 나는 아플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법이 불법이 되는 순간을 잘 따져보면 거기에는 어떤 손가락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손가락은 모래밭 위에 동그라미로 표시를 합니다.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게 되는 이들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고, 그 밖에 있는 이들은 비정상적이고 불법입니다.

손가락이 나를 동그라미 안에 들여보내주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걸까요. 나는 동성애를 하지 않으니까 상관이 없는 걸까요.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내가 아닌 어떤 손가락이 판단하고 그에 합당하게 배치한다는 점에서 문제인 건 아닐까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미성년자인 때가 있는 것처럼 언제든 정상의 범주에서 밀려나 배치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을 조성하는 손가락, 그것이 문제가 아닐까요?

언제든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은 최선을 다해 손가락에 복무해야 한다는 태도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온당치 못한 손가락에 복무하지 않음으로서 불온한 존재가 되기를 자처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표현하는 일을 선전이라고 명명하고 금지시킨 것에 저항한 청소년들이 그랬고, 나의 존재를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반대한 이에게 무지개 깃발을 들어 보인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그랬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불온한 존재에 연대하기 위해 언제나 고민합니다. 불법이 불법이 되는 순간에 대해서 질문하고 지적하기 위해서요. 질문하고 지적하기를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그 거대한 손가락을 꺾게 될 날이 올지 모르니까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