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이 세상에 완벽한 악당은 없어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5/31
안녕하세요! 자원활동가 정현입니다. 벌써 마지막 편지라니, 새삼 영화제가 코앞이란 사실에 놀랐어요. 저는 나흘 쯤 머릿속 한 구석에 여러 편지 글감들을 두고 한참을 주변인으로 서성였어요. 여태껏 저는 해변가에 그려놓은 낙서를 삼키는 파도처럼 나를 지워내는 데에 익숙한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딘가 반칙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흰 종이 위에 여태 내 삶에서 악당이었던 것들을 두둥실, 떠올려요. 주로 생각하는 주제는 나를 많이 아프게 했던 집안 풍경이죠. 요즘따라 많이 보이는 건 아무것도 무너질 것이 없는 사람처럼 태평한 척 굴었던 나예요. 누구의 말처럼 살아남기 위해 꺾이거나 휘어야 하는 상황에서 제 삶은 차라리 휘어버렸나 봐요.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니까 사실 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스스로와 충분히 대화했다면 이렇게까지 영문도 모른 채로 나를 미워하고 스스로를 악당으로 몰아세우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또 과거의 나를 검열해요. 그게 아니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실재하는 위협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내가 온갖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조금 오래 걸렸구나, 나를 토닥여요. 고작 그 뿐이었음을 곱씹어요. 세상이 나의 존재를 불온하다고 규정한다면, 나는 몇 번이고 악당이 되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고민을 이어나갈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저는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하니까요. 이 흰 종이를 우리가 꿈꾸는 내일로, 오늘로, 무지갯빛으로 물들이는데 색색 붓끝으로 힘을 보태겠어요. 꿈꾸는 바보 아니냐는 소릴 들어도 아무렴 좋은걸요. 어두웠던 낯에 따스한 볕으로 들어주어 고마워요. 우리 자원활동가들도 얼마 남지 않은 영화제까지 파이팅이에요! 많이 사랑하고 애정합니다. “우리가 지나간 어느 기슭에 몰래 손을 씻는 사람들아 언제나 당신들보다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흐른다” -강, 도종환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