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서울인권영화제 관객 후기) 정확한 주황색

(22회 서울인권영화제 관객 후기) 정확한 주황색

서울인권영화제 울림은 영화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싣고자 고민합니다. 울림 활동가 유영이 22회 서울인권영화제를 방문한 관객이었던 상하 님에게 올해 영화제의 후기를 받았습니다. 

정확한 주황색

세상 방방곡곡에는 악의恶意들과, 그 악의와 싸워나가는 행동과, 사람과, 말들이 있음을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습니다. 이 요소와 과정들은 어떤 시절부터 쉴 새 없이 반복 되었을텐데, ‘왜 나아지는게 하나도 없지, 이럴 바에는 내가 친구들을 모아서 섬을 하나 사서 새 나라를 세우는 편이 낫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을 접었습니다. 일단 그냥 현실성이 없기도 하고, 도피나 회피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한번에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싸우고 공부하는 편이 모두가 천천히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많은 말들을 하는데, 나는 왜 어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 마치 음식들이 공기에 노출되자 마자 산화되는 것처럼, 내 말들도 말이 되는 순간, 어딘가에 노출되는 순간부터 원래 그것이 변하는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말하면 ‘원래 그것’이 말에 가둬지고, 가둔 말들을 다시 풀어주기 위해서 또 첨언을 하고 꼬리를 무는 반복. 예를 들면 어떤 주황색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하면, 빨강과 노랑을 얼만큼 섞었는지, 그리고 그 빨강은 핏빛인지 장미빛인지, 노랑은 개나리빛인지 레몬빛인지, 정확하게 말로 전달할 수 있을까요? 색은 색 코드라도 있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목도한 서울인권영화제의 출력(전달)방식들을 복기해봤습니다. 문자통역, 수화통역, 영화의 원래언어의 자막과 번역한 자막,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속 사람들이 싸우는 행동들(스크린). 이만큼의 고민이라면, 어떤 전달도 믿을 만하다 생각했습니다. 개중에 가장 든든한 전달은 씨씨 본인과 씨씨와 함께한 사람들이었고, 가장 역겨운 전달은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의 설교꾼과 정치꾼이었습니다. 아마 저는 그동안 접한 설교와 정치에 의해서 말(전달)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겠죠. 그리고 앞으로는 씨씨와, 씨씨와 함께한 사람들과, 문자통역과 수화통역을 염두에 두고 잊은 말에 대한 순기능을 찾을 것이라 다짐합니다.

설교와 정치는 말이 방대하더라도 종국에는 본인들이 생각하는 주황이 어떤 주황색인지 전달할 수 있을지라도, 결코 수많은 주황색을 설명할 수 없고, 무엇보다 여러가지의 주황색과 함께 하지 못하겠죠. 그렇지만 우리의 노력들은 말로는 정확한 주황색을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여러가지의 주황색도, 다른 색도 함께할 수 있고,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삐뚤더라도 상관없는, 모두가 천천히 행복해지는 길을 닦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믿기는 이렇게 믿어도, 노력을 아무리 해도 인류애를(아니,사랑 자체를) 잃는 때가 너무 많긴 합니다. 아무리 피해도 어디선가 들을 수 밖에 없는 설교나 정치질.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내 통장 잔액, 거기다가 행복에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말들. 그래서 어떤 것도 하기 싫어질 때 내가 다시 인류애를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인권영화제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이나 같이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그곳에서까지 듣게 되는 어이없는 발언마저 안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 에어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생쥐가 슥 나와서 아주 빨리 저쪽 하수구에 들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애어백들 덕분인지 마음의 미동 없이 담담하게 생쥐가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숨어다니고 쫓겨다니고 뭔갈 숨기며 사는건, 생쥐나 저나 다를 게 없으니까요.

 

서울인권영화제의 재정 및 일체의 안정화를 빕니다.

 
22회 서울인권영화제 관객 _ 상하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