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핑크워싱에 반대하며 서울인권영화제,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7/08/02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광장에 차려진 서울인권영화제 부스. 24번 서울인권영화제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어있고 자원활동가들이 부스 앞에 서서 부스를 꾸미고 있다)
7월 14, 15일, 시청광장에서는 18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는 주제로 미국, 영국, 호주 등 13개국 대사관과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 인권재단사람, 성소수자부모모임 등의 인권단체 등 백여 개의 연대부스가 차려졌는데요.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와 무지개예수 등 진보성향 개신교 단체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부스도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부스를 열었습니다. 불온뱃지와 불온향초 등 이번 22회 슬로건이었던 ‘불온하라, 세상을 바꿀 때까지’ 관련 기념품뿐 아니라 핑크워싱에 반대하는 인쇄물, 영상물을 만들어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여러분도 서울인권영화제 깃발 아래로 무지개 깃발과 팔레스타인 국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셨나요?
그런데 퀴어퍼레이드 중에 저는 지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영화를 틀어주는 곳 아니냐고요. 왜 퀴어퍼레이드에 무지개 깃발을 가지고 온건지 궁금하다고요.
(퍼레이드 행렬에 참가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 "이스라엘은 핑크워싱을 멈춰라! 점령에 성소수자 자긍심은 없다!" "퀴어 해방도, 팔레스타인 해방도 지금 당장!" "No to Pinkwashing! No to Israel Apartheid! There is No Pride in Occupation!" 이라고 쓰인 큰 현수막을 들고 있다. 현수막 아래 부분에는 "서울인권영화제"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로고와 이름이 쓰여있다)
섹슈얼리티가 어떤 방식으로 허용되고 통제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어떤 행위를 하고 하지 않는지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을까요? 그게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라면, 그렇게 해서 그들이 침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지만 이런 고민은 동성간 연애에서뿐만 아니라 이성간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성간 연애에서도 어떠한 방식의 관계맺음에 대해서는 ‘변태스럽다’고 치워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퍼레이드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인권을 보장받고자 하는 갈증과 요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규범에 의해 재단되었던 경험을 가진 모두의 공간이라는 확인 말이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그 사실을 덮기 위해서 동원되는 성소수자의 섹슈얼리티 역시 같은 고민의 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일 나의 섹슈얼리티가 국가폭력을 감추기 위해서 ‘허용’되는 것이라면 이에 반대하여 목소리를 낼 이들은 비단 당사자뿐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내가 아니라 언제든 나를 주변부로 치울 수 있는 누군가에게 있는 것이니까요.
서울인권영화제는 이번 퀴어퍼레이드에서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핑크워싱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면서 저는 필요할 때 편하게 동원되고 성가실 땐 언제든 삭제당할 수 있는 사랑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죠. 뿐만 아니라 낙태죄 폐지, 성중립 화장실,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에서의 여러 담론들, 의제들, 그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그 공간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모든 이야기가 무겁고 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해도 되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인권에 대한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없었다고 생각되고요. 그렇기에 서울인권영화제가 더욱 더 힘을 내야 하는 것일테지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