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블랙 코드>, 우리는 피해자로만 남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나눠요] <블랙 코드>, 우리는 피해자로만 남지 않을 것입니다

(22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블랙 코드>의 장면 중 하나. 뒷쪽에 깃발을 들 사람들이 서 있는 광장에서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입에 USB메모리를 물고 쪼그려 앉아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SNS를 즐겨합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블로그 … 수많은 인터넷 공간 안에서 이러저러한 주제들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적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그 추억을 다시 기록합니다. 이렇게 기록되는 일상과 생각들은 다시 어디인지 모를 인터넷 공간의 어느 곳에 저장됩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과 그에 맞춰 점점 넓어지는 인터넷 공간 속에서 누군가는 이런 기록들을 몰래 훔쳐내어 사람들의 행동을 파악해서 인터넷 공간 밖에서도 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려 합니다. 22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블랙 코드 Black Code>는 이런 억압의 시도를 폭로하며 시작합니다.

 

어떤 정부는 채팅 어플을 통해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핸드폰을 해킹하고, 어떤 정부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타국으로 망명한 운동가의 조력자들을 잡아들입니다. 어떤 정부는 평범한 사람의 SNS 게시글을 하나씩 검열하며 그가 던진 농담 한 마디에 그를 ‘반동적인 인물’로 규정해 수감하고 고문합니다. 발전한 통신기술이 우리를 편리한 세상에서 살게 해줬지만, 그와 동시에 더욱 쉽게 감시당하고 더욱 쉽게 억압당할 수 있게 한 겁니다.

 

<블랙 코드> 속의 여러 사례들처럼, 인터넷 공간 안에서 나에 대한 정보가 훔쳐진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을 도난 당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도난 당한 정보들을 통해 누군가는 내가 하는 생각과 하려는 행동들을 감시하고, 그것을 방지하거나 예방한다는 명목 하에 나에게 폭력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진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는지 마저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에 의해 내가 쓴 말들이나 찍은 사진들이 짜깁기 되어 나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방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우리를 지키고 우리의 소중한 정보와 기록들을 지킬 수 있을까요?

다양한 대답들이 있겠지만, 영화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은 바로 ‘기술’을 통해 맞서는 것입니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그들이 발전된 기술로 우리를 억압하려 한다면, 우리 역시도 이 발전된 기술을 통해 서로 연결하고 그들에게 맞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티벳의 독립운동가들은 티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기록하고 외부로 공유하여 그 안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어도 폭력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브라질의 미디어 활동가들은 시위의 현장을 촬영하고 생중계하며 경찰의 폭력과 불법적이고 조작적인 시위 해산 시도를 알렸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폭력의 희생자가 될 뻔한 누군가가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영상 공유로 구해지기도 했습니다.

 

 

(티벳어로 빼곡히 쓰인 종이 옆에 핸드폰이 놓여있다)

 

 

우리는 인터넷 세상 안에서 스스로를 기록하기도 하고 타인의 기록을 공유 받기도 합니다. 물리적 시간과 공간에 구애 받지 않는 그 곳에서, 서울에 있는 나는 성주의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서울 광장 촛불시위 현장 속의 내가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 수만 명에게 나와 내가 있는 곳의 기록을 보여줄 수도 있고요. 이 기록들은 때로는 현장에 있던 이와 현장에 없는 이를 연결시켜주고, 때로는 왜곡된 진실을 증명해주고, 때로는 잠겨 있는 진실을 수면 위로 올려줍니다.

 

 이 시대의 인터넷 기록 – ‘정보’라는 것은 더 이상 인권의 문제와 떨어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자본과 기술 앞에, 우리를 멋대로 조종하려는 누군가에 의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 감시당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해자로만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만의 것이 아닌 기술로써 서로의 기록에 반응하고 끊임없이 서로에 연결하며, 그들의 폭력을 증언하고 함께 분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