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당신께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1/17
당신께. 까만 겨울밤. 처음으로 시린 발을 사무실에 들여놓았을 때 누군가 밝은 미소로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 있었고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께. 고백합니다. 저는 사무실 화장실에서 서서 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럴 뜻은 없었지만 너무 다급한 나머지, 앞에 붙어있는 메모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다음에 화장실을 갔을 때는 당연히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왠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당신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말로는 잘 정리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을 설명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나름대로 ~한’을 선두에 내세웠을 뿐,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에 참여할 때마다 머릿속에 균열이 가고 있습니다. 망치로 깨부수고 새로 지을 수 있는 집이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 좀 더 균열에 속도를 높이도록 힘을 쓸 것입니다.
당신께. 당신이 나를 ‘형’이라고 부르면 나는 마음이 설렙니다. ‘왜 목요일 밤엔 연락이 되지 않느냐’고 투정을 부리지만, 다음에는 ‘네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지지해’라고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제가 엄동설한에 뭐라도 할 수 있게 힘을 주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당신께. 집에 와서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오늘 토론시간에 제가 결례를 범한 것은 아닌지. 조심하는 것까지 조심한다고 했는데, 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 미안한 생각이 드는데 아직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은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이곳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던 사람의 말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좀 더 예민해지는 방식으로.
친애하는 당신께. 제 마음과는 달리 아직 한 마디도 나눠보지 못하였네요. 어쩌면 저는 지금,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새롭게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경황이 없는거라고 변명을 해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약속 7번(사무실에 왔을 때에 이야기를 안 해본 사람들이나 모르는 사람들과 더 같이 있으려고 노력! 해보기)을 되새기며 다음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함께할 날들이 더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