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씨씨와 커스터머 사이에서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1/17
(씨씨에게 자유를 스틸컷: 씨씨가 타투 시술을 받기 전 침대에 누워있다. 씨씨 왼쪽에는 타투 도안인 불사조가 그려져 있다.)
2011년 6월 5일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한 백인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용의자는 흑인 트랜스 여성 씨씨 맥도날드로 지목 된다. 씨씨는 혐오 범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백인 남성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위로 찌른다. 하지만 언론은 이 사건을 다룰 때 트랜스 여성인 그녀를 남성으로 지목했으며, 씨씨에게 가해진 폭력이나 그녀가 자신을 방어했어야만 했던 사정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그 후 씨씨는 '트랜스 여성'이지만 남성 전용 감옥에 수감된다. 인종차별적이고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씨씨의 사건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고 이에 대응하고자 씨씨와 연대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 그리고 "씨씨에게 자유를!"이라고 외치며 투쟁하기 시작한다.
<씨씨에게 자유를!>은 인종, 성소수자, 성별 등에 기인하는 차별과 폭력을 보여준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방어했을 뿐인데 어째서 씨씨는 자신이 살아남은 것에 대한 형을 선고 받는가? 씨씨는 모두가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도 안전하게 걷기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사법체계 전체는 조사 과정에서부터 씨씨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고 트랜스젠더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배제한다. 미국 사법체계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세상은 씨씨에게 요구한다. 본연의 모습대로 살지 말라고, '진짜' 자신을 찾지 말라고,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에 대한 표현을 하지 말라고. 그래야만 이해받을 수 있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성소수자가 사회가 말하는 ‘정상적인’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혐오 하기 쉬워진다.
나는 헌법에 평등과 존엄의 권리가 존재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집단들이 억압을 받는다는 걸 느꼈다. 성소수자에게 혐오를 내비치는 사회는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정상성에 부합하는 특정한 존재만 소중히 하고, 이들한테 무슨 일이 생길 때만 반응을 하며 그 정상성에서 배제되는 존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얼마나 참혹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나.
하지만 그렇게 절망적이기만 한 사회는 아니다.
<씨씨에게 자유를!>에서 씨씨 주위에 굳게 단결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씨씨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트랜스 여성은 개인간의 폭력과 구조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취약한 환경 속에 있다. 그렇기에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권리를 위해 발언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젠더 정체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나는 다층적인 혐오에 얼룩진 사회 앞에서 그 권리를 위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씨씨에게 자유를!>은 더 이상 차별과 폭력을 보고만 있지 말라고, 우리도 우리의 삶을 위해 투쟁을 할 권리가 있다고 알려준다.
씨씨는 작중에서 이런 말을 한다. "저는 또 다른 유색인종 트랜스 여성의 죽음에 대해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단순히 통계자료의 숫자로 남지 않을 겁니다.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되길 거부합니다." 씨씨의 말이 씨씨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나의 세계가 좁아졌다 느낄 때, 나는 책을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자 한다. 독서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처음으로 나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정의하게 된 후 막연한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겪었고, 주위에선 아무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기에 나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많이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찾을수록 사회에서 부정당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받았다. 항상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고, 사회 안에서 요구하는 남성/여성의 틀 안에서 나를 정의해야 했다. 남성/여성 그중에 나의 정체성은 없음에도 계속해서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폭력을 겪었다. 이것에 부당함을 느꼈지만 주위에 아무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침묵 해야만 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커스터머>를 집어 들었다.
<커스터머>에서는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스스로 선택한 사람. 그게 커스터머다."라고 커스터머의 정의를 내린다. 커스텀은 자신의 신체에 날개를 달 수도 있고, 눈동자 색을 바꿀 수도 있고, 몸에 꽃을 피울 수도 있다. 수니는 모래시에 거주하는 하위 계층인 ‘웜스’인데, 고등학교 배정에서 보통 웜스들이 진학하는 학교가 아닌 태양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배정된다. 수니는 그곳에서 커스텀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자와 남자의 몸을 갖고 있는 ‘중성인’ 안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신체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커스텀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수니는 커스터머가 되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다. 수니의 삶은 고등학교를 진학했을 때부터 모든 게.바뀌기 시작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해서 얻어내고, 자신의 삶을 당당히 찾아가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관계 속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기도 하며 성장해나간다.
<커스터머>는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퀴어 SF 성장소설로 분류 될 수 있고 ‘성장’ 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작중에서 커스터머는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혐오범죄에 노출된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커스터머들은 연대를 하며 서로를 북돋아준다. 이런 점은 <씨씨에게 자유를!>에서 나오는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수니를 통해서 내가 바랐던 모습들과 성소수자로 정체화하기 전 겪었던 두려움에 공감했다.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인정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한 가지였다. 두려웠기 때문에. 사회가 정상이라고 정의한 선을 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용기 있게 자신의 권리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커스터머>는 나에게 도망치지 않는 법을 알려준 책이다. 수니는 자신의 삶을 다른 이가 선택하게 하지 않고 자신이 결정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선택해나가라고 말해준다. 수니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배웠고 위로를 받았다. 이 세상에 또 다른 수니들이 <커스터머>를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참고자료] <씨씨에게 자유를!>시놉시스 참고 제22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남선 | 씨씨에게 자유를! | 서울인권영화제 http://hrffseoul.org/ko/film/2234
[참고자료] 2017, <커스터머>, 이종산, 문학동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햇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