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페미니즘 물결 속 우리들

(활동펼치기) 페미니즘 물결 속 우리들

페미니즘 세미나를 준비해달라고 연락을 받았을 땐 사실 많이 고민했다. 내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을 우려하기도 하고, 여성학 전공은 더더욱 아니며, 페미니즘을 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요즘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누군가와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니 부담스러웠다. 특히 내가 페미니즘을 강의실이나 종이 속이 아닌 현실 속에서 접했기 때문에 지식을 많이 모를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움츠러들게 하곤 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배워가면서 현재 한국 여성운동 부분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관심이 많았고 이 기회에 나 또한 나를 성찰하고 다양한 페미니즘의 갈래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세미나 준비의 첫발을 디뎠다.

 

<그림1. 페미니즘 세미나 발제문이 책상위에 올라가 있다. 주변에 간식과 음료가 이리저리 널려있고 자원활동가 사로가 펜을 쥐고 있다.>

 
 

우선 세미나의 목표는 하나의 입장을 가지면 나머지 입장을 배제한다고 여겨지는 페미니즘을 'n개의 페미니즘'으로 이해하면서 모두가 한가지 입장만을 가지는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반대가 리버럴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리버럴 페미니스트이면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과 생각을 같이할 수 있다. 나도 나의 생각을 한가지 페미니즘에만 끼워 넣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또 SNS와 인터넷에서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여기에서 더 나아가 페미니즘이 어떤 흐름과 계보를 가지고 현재 우리에게 닿아왔는지 전달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것에도 초점을 맞췄다.

페미니즘 세미나지만 단순히 추상적인 페미니즘 개념을 이해하고 끝날 순 없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이었던 <섹스,설교 그리고 정치> 와 <발렌타인 로드>를 보고 난 후, 이 영화를 어떻게 페미니즘으로 연결시킬지, 어떻게 하면 다양하고 심도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토론으로 발전시킬지도 고민해야 했다.

 

<그림2. "나는 꽃이 아니다. 우리는 불꽃이다"라는 제목으로 그린 자원활동가 나현의 일러스트. 다양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동그라미 안에서 어울리고 있다>

 

페미니즘 이론과 영화에 맞는 토론 주제, 자료들을 고민하고 세 차례에 걸친 회의를 진행했다. 무조건적인 평등과 반혐오로 귀결되는 토론이 아닌 다양한 이야기와 입장이 나올 수 있도록 '페미니즘 지형도 그리기' 와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제시하고 토론하기' 를 준비했다. 영화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몹시 비슷했기 때문에 영화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22회 상영작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에서 나오는 낙태죄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보수 기독교도들의 낙태죄 폐지 반대가 거세다는 점도 같다. 기독교 세력이 정치계와 결탁하여 차별을 방관하고 혐오를 부추긴다는 점에서도 결을 같이한다. 현재 논란이 되는 자유한국당의 충남인권조례안 폐지 발의 뒤에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가 있음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기독교'라고 해서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으로 낙인찍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한 토론도 필요했다. 어떤 집단이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혐오의 편에 서지 않은 신앙인도 분명히 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종교 내외부에서 겪는 배제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었다.

20회 상영작 <발렌타인로드>를 보고 난 뒤에는 퀴어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라는 주제를 지금 한국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트랜스젠더 배제 래디컬 페미니스트(TERF)'와 연결해 논의할 수 있었다. 사회에서 어떻게 트랜스젠더를 차별하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는지, 가해자(호모포비아)를 위한 연대가 어떤 회로로 연결되어 작용하는지도 공유했다.

 

 

 

<그림3. 활동가마다 페미니즘 지형도를 그려보며 페미니즘의 다양한 갈래 중 자신은 어디쯤에 속하는지 알아보았다. 지형도에 적혀있는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맑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 제 3물결 페미니즘, 상호교차성, 언피씨함,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빈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미나는 비록 시간관계상 페미니즘 지형도까지만 진행되었지만 페미니즘의 다양한 갈래를 알고 내 안의 페미니즘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여러 페미니즘과 물결들 속에 때로는 휘청이는 우리가 서로 각자 살아온 경험과 생각을 기반으로 어떤 페미니즘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타인과 어떻게 나눌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페미니즘은 이 추운 겨울에도 한동안 식지 않을 것이다. 그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연대를 할 것인지, 나와 우리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나눠야 할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