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사람이 지워진 공장, 팍스콘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2/14
매일 매일 의미도 모르는 같은 동작을 12시간 동안 반복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다큐멘터리 <팍스콘 : 하늘에 발을 딛는 사람들>은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국계 거대 기업인 팍스콘에서 일어난 연쇄 자살 사건과 노동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2010년 1월부터 2011년 11월 까지 무려 24명이 팍스콘 공장에서 투신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생존자 ‘티엔 위’도 그 중 한 명으로, 투신했을 당시 나이는 고작 17살이었습니다. 그녀는 '작업량이 너무나도 많다', ‘자기가 하는 작업의 의미를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실수를 하거나 할당량을 다 채우지 못할 경우 관리자가 공개적으로 비난한다’고 팍스콘에서 있었던 일들을 증언합니다.
실제로 팍스콘 공장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FLA(Fair Labor Association, 공정노동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팍스콘 노동자들은 중국법에서 정한 노동시간 제한 기준인 49시간을 훨씬 초과한 주당 평균 56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저임금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을 받기 위해 연장근무를 강요당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고작 10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고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었습니다.
사진(1) 팍스콘 공장 노동자들
출처 : the Guardian - Life and death in Apple’s forbidden city
Photograph: Wang Yishu/Imaginechina/Camera Press
무려 하루 약 12시간 동안 단순 기계조립만 반복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체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유투버는 <FOXCONN SIMULATOR(팍스콘 시뮬레이터)>라는 영상을 업로드 해놨습니다. 재생시간이 7시간 가량인 동영상 두 편입니다(사진2). 15시간 동안 기계 부품을 조립하는 장면만 반복됩니다. 한 유저가 ‘Omg I can't get past the first 30 seconds of this... 15 hours really?(맙소사. 처음 30초도 못 넘기겠다. 정말 15시간이나?)’ 라고 댓글을 단 것이 인상적입니다.
사진(2) <FOXCONN SIMULATOR>
- 15시간 동안 기계조립이 반복된다. 실제 팍스콘 공장 노동자들의 매일 겪는 모습이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qhcz6bQydSg
팍스콘은 13단계의 관리체계를 가지고 있고, 해고와 관련한 직원규칙만 85개에 해당하는 등 엄격하고 과도하게 통제적인 관리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2012년에는 경비원이 노동자를 폭행한 것이 발단이 되어 대규모 폭력 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팍스콘의 비인간적 대우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인간적인 노동으로 몰아 부친 배경에는 산업화의 어두운 이면인 생산성의 논리가 있습니다. 중국의 인건비는 미국의 4%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애플과 같이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한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더 싼 노동력, 더 높은 효율이 지향하는 곳에 ‘사람’은 빠져있습니다. 생산성의 논리에 따라 팍스콘의 노동자들은 기계 부품처럼 일하고 있는 것이죠.
사진(3)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Foxconn 공장의 사건에 대해 묻자
‘It's a pretty nice factory(꽤 괜찮은 공장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스티브잡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hk6eyazbZos
팍스콘의 사건이 논란이 된 후, BBC, 가디언지 등과 같은 각종 매체와 신문에 티엔 위를 포함한 팍스콘 공장의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보도되었고 회사 측은 임금 20% 인상, 상담사 고용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현된 것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자살 방지 그물망 설치’, '창문을 여는데 30초의 시간이 소요'되도록 하는 등의 미봉책만 실현이 되었을 뿐 근본적인 원인 해결에는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기업경영 책임자들이 전혀 노동환경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팍스콘 공장에 대해 ‘팍스콘은 노동착취 현장이 아니다’, ‘팍스콘의 공장 직원 수를 감안하면 미국 전체 자살률보다 낮다’, ‘식당도 있고 병원도 있고 수영장과 영화관도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팍스콘 CEO 역시 2014년 주주회의에서 팍스콘의 자살 사건을 두고 ‘근로자들이 업무에 지쳐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생존자 티엔 위가 투신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팍스콘 관리자가 찾아와서 돈을 건네며 ‘이제 회사의 책임은 없다’ 라고 말한 것과 겹쳐 보입니다.
사진(4) 팍스콘의 생존자 티엔 위
21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팍스콘: 하늘에 발을 딛는 사람들> 중
하지만 경영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노동자들이 호소했던 우울은 최소한 회사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울의 3요소(cognitive triad)는 흔히 ‘자기 자신’, ‘현재 경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쉽게 말해,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보고, 외부세계를 부정적이고 처벌적인 곳으로 보는 경향, 미래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인지하는 것입니다. 팍스콘이 노동자들에게 부과한 막대하고 기계적인 노동 강도는 자기 자신이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자각마저 잊게 만들었고 관리자들에 의한 감시, 공개적인 모욕과 처벌은 노동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소통의 단절과 저임금은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조차 버릴 수밖에 없게 해 노동자들을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요? 2016년 팍스콘 장쑤성 공장은 노동자 6만 명을 로봇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월 10일. 불과 한 달 전, 또 다른 노동자가 중국 정저우 팍스콘 공장에서 투신을 했습니다. 끝까지 생산성의 논리만 있었을 뿐, 사람은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티엔 위는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서 샌들을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을 하고, 새로운 연인을 만났습니다. 팍스콘이 그저 기계 부품처럼 쓰다 버렸던 티엔 위는 사람이었습니다. 제2, 제3의 팍스콘은 우리 삶 곳곳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공장 뿐 아니라 회사와 같은 곳에서도 열악한 노동환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착취, 강요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동환경이 과연 어떤지,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사람으로서 충분히 존중받고 마땅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혹은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기계부품이 되어있는 것인지 <팍스콘 : 하늘에 발을 딛는 사람들>을 통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하린
*<팍스콘: 하늘에 발을 딛는 사람들>은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지원을 통해 공동체에서 상영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hrffseou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