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그녀는 살고 싶었다

(함께나눠요) 그녀는 살고 싶었다

(사진1 서울인권영화제 21회 상영작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 스틸컷. 브라질의 한 여성인권 활동가가 화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은 요란한 헬기 소리와 함께 급박한 상황을 보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마디 해달라는 앵커의 질문에 엘로아는 답한다.

“전 괜찮으니까 경찰도 침착했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한테 총알이 많아서 성급히 굴면 절 죽일 거예요.”

 

한 남성이 두 명의 십 대 여성을 인질로 잡았다. 가해자 린뎀베르기는 연인관계였던 엘로아와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그녀의 집에 무기를 들고 침입했고, 그녀와 그녀의 친구인 나야라를 납치했다.

 

납치현장은 통신 채널들로 가득했다. 여러 방송 차량에 위성 안테나들이 포진했다. 언론은 경쟁이라도 하듯 ‘최초공개’, ‘독점보도’, ‘총성’ 등의 자극적인 말로 매체들을 도배했고, 가해자 린뎀베르기는 ‘연애 문제로 절망에 빠진, 열심히 살던 청년’으로 비춰졌다. 이 말들은 범죄사실을 희석하고 사건을 낭만화했으며, 납치범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결론적으로 피해자 엘로아의 말을, 존재를 지웠다.

 

경찰은 언제든 납치현장에 진입해 인질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가해자는 전과가 없었고 이 사건은 연애 문제였다는 브리핑을 내놓았다.

결국에 위험을 감수한 것은 피해자의 몫이 되었다.총성으로 아수라장이 된 납치현장은 언론에 의해 배경음악과 하이라이트 영상, 광고까지 삽입되어 영화처럼 만들어졌고, TV는 사람들을 선동하기에 충분했다.

엘로아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의 사람이 모였지만, 그들 모두가 정말 엘로아를 추모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할 수 있을까.

엘로아는 살고 싶었다. 그녀는 보호받지 못했다.

 

미투운동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피해자들은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성범죄 피해에 대해 폭로를 하고 있다.

용기 있다는 많은 이들의 지지와 응원 뒤에 한편으로는, 그들이 ‘충분히 보호받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낀다. 실명과 얼굴을 밝히지 않고서는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어렵다.

때로는 폭로하는 피해자를 보며 “피해자 같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피해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 내어야 할까.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드라마, 구체적인 묘사와 빼곡한 증거들, 따가운 눈총과 숨겨진 의심들은 진실을 가리는 견고하고 잔인한 벽이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의 마지막엔 검은 화면과 더불어 피해 여성들의 이름이 불린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죽어간 피해 여성들의 이름을 말한다. 나지막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지금, 살아남은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말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로이기에.

서로의 존재를 말하고 듣는다. 그러므로 더 이상 지워지지 않는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