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늦은 진심을 모아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3/28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왜 이리도 마음에 와닿는 편지가 쓰이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저 이 글을 읽는 당신께 나의 늦은 진심이 진솔하게 전달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편지에 무슨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약간의 고민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거든요. 나는 수줍음이 꽤나 많은 사람이기에, 앞서 고민했던 다른 이야기들은 비밀로 할 거예요. 대신 결론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감사의 이야기를 담겠어요.
먼저 수도 없이 불온하라고, 세상을 바꿀 때까지 불온하라고 외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당신은 불온해지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함께 하자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건 이 용기에서 시작되었어요. 고맙습니다. 함께 불안과 고통을 나누어 준 당신도 고마워요. 서로에게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투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원한다면 힘에 부치는 상황을 이겨내지 않아도, 힘든 감정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던 말이 주었던 위안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의 끈을 놓지 않은 당신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차가운 세상에서 따뜻함을 잃지 않는 당신을 닮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 옆에서 나 역시 또 하나의 힘이 되려고 합니다. 주절주절 말했지만 사실은 전부 그저 당신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그 뿐이에요. 아,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나와 마음이 통한다면 모두 '당신'이 되어 나의 감사를 받아주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다정함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애정과 온기가 있어야지만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불온은 참으로 다정합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사납고 무섭다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또 누군가는 오지랖이 넓다고 표현합니다만, 왜 나의 느낌에는 한없이 포근한 걸까요? 나는 감히 그 이유를 우리의 불온함이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없고서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들 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우리가 바꾸어 낼 세상은 따뜻할 것입니다. 온기와 정성으로 일군, 아주 다정한 세상일 것입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바뀌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바뀌어 나갈 것이니까요.
올해도 우리는 순조롭지만은 않은 산들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할 수 있는 만큼의 힘을 다하겠지요. 나는 지금도 많은 것이 두렵고 앞으로 더 두려울 테지만 당신들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나가 보려고 합니다.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 다정함은 나의 기댈 구석입니다. 진득히 기대어 살아낼 것이니 부디 함께 자리해주세요. 물리적으로 곁을 채우지 않아도 함께 한다는 마음이라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원한다면 언제든 기대주세요. 우리 함께 불온하게, 그렇게 다정하게 살아가고 또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라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려나요? 모두들 안녕하지 못해도 소소하게나마 웃을 일들이 있기를 바라며, 이만 편지 마칩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이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