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기억 : 하나의 단어로 묶인 수많은 삶

(함께나눠요) 기억 : 하나의 단어로 묶인 수많은 삶

4월 7일, 토요일의 광화문은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광장에는 세월호와 제주 4.3 70주년 범국민대회가 열렸고, 소라탑에서는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노란 리본과 태극기, 동백꽃과 성조기가 함께하는 장면은 어지러웠습니다.

 

<사진1 :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제주 4·3 분향소. 현수막이 설치된 분향소 입구에는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고 쓰여있다.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들로 제주 4·3 희생자들의 이름이 가득 쓰여있다. 입구에는 조문하러 온 시민들이 줄 서있고 그 주변에는 하얀색 국화들이 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경찰에 의해 6명이 사망합니다. 이 사건은 이후 제주도 안과 밖의 복잡한 정세들과 뒤엉켜, 1948년 4월 3일 제주 4.3사건의 도화선이 됩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2만 명에서 3만 명이 죽는 학살의 시작입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총의 굉음과 폭력의 시간들은, 1954년에 끝납니다.

하지만 이 7년이 넘는 세월은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는 사이 제주도는 따뜻한 기후, 돌하르방, 한라산을 내세운 관광 명소로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2000년이 돼서야 국가에 의한 4.3사건 진상규명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배 한 척이 침몰합니다.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몇 시간 후 전원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가라앉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거의 구조되지 못합니다. 이에 대한민국은 술렁입니다. 왜 전원구조 되었다는 오보가 뜬 것인지, 해경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배의 침몰 원인은 무엇인지, 진짜 생존자는 몇 명인지 모두가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곳곳에 분향소가 차려지고 추모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곧 분위기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바뀝니다. “유가족들이 국가에 받은 돈이 얼마인데 아직도 그러냐”는 말들이 나옵니다. 그렇게 배가 계속해서 물 밑에 가라앉아있던 시간 동안, 바깥의 노란 리본은 '아직도 달고 다니냐'라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사진2 : 바닥에는 시민들이 직접 그린 큰 현수막이 있다. 현수막에는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문구와 제주도와 태극기,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중간의 '대한민국' 글씨는 분홍색과 빨간색의 수많은 동백꽃으로 가려져 있다. 현수막 주위에는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을 찍는 여러 사람이 있다.>

 

다시, 2018년의 4월의 광화문 광장에서 뒤섞인 여러 개의 기억을 봅니다. 머릿속에 가득 찬 이미지와 목소리들과 함께, 생존자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강인한 사람들인지 되뇌었습니다. 폭력의 시간이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은 후 살고 죽는 사람들이, 그 때문에 얼마나 강인해지는지를 되새겼습니다.

 

어떤 시간은 단지 살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한 듯합니다. 어떤 경험들은 말해지는 것만으로도 역사가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경험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어쩌면 연대할 수 있습니다. 종종, 어떤 시간은 쉽게 왜곡되어 적히고, 진실을 기억하는 것조차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단어로 묶인 수많은 삶을 기억합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것은 단지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이 아닙니다. 한명 한명의 사람이, 하나하나의 삶이 죽은 사건이 몇백 번, 몇만 번 일어난 것입니다.1) 그 무게를 마주하고, 기억하는 것은 너무 아득한 일이지만. 그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1) 한겨레21(2018-03-19), 제주 4·3 70년 특집 "死·삶을 말한다"

제주 4·3 70년 특집 "死·삶을 말한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