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장애인접근권 : 대체텍스트

(활동펼치기) 장애인접근권 : 대체텍스트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이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저는 슬로건이 정해지고 23회 영화제의 날짜까지 발표되자 정말 영화제를 한다는 것이 실감 나더군요.
영화 선정이 대부분 끝난 요즘,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에게 영화를 선정하고 프로그래밍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접근권에 관한 활동입니다. 영화에 들어가는 자막과 수어통역 화면, 대체텍스트 등이 거기에 해당하지요. ‘영화제를 통한 인권 활동을 하는 인권단체’라는 정체성을 가진 서울인권영화제에게 장애인접근권 실현을 위한 노력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최근 ‘장애인접근권 팀’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영화제가 할 수 있는 장애인접근권에 대한 활동을 전담하여 고민하고 추진하는 팀입니다. 더불어 영화제 준비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 접근권과 관련된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한 울림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시리즈의 첫걸음입니다.

울림 소식과 서울인권영화제가 올리는 글들을 꼼꼼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는 업로드되는 모든 이미지 파일들에 설명을 달고 있습니다. 이것을 ‘대체텍스트’라고 합니다.
대체텍스트는 웹 상에 올라온 이미지, 버튼 등을 시각장애인들도 인식하고 이용 또는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면 웹을 읽어주는 기술을 통해 웹페이지의 정보를 이해하고 이용하게 됩니다. 시각중심적인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지요.
컴퓨터, 핸드폰,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과 콘텐츠를 전달해주고 유흥거리도 마련해 준 좋은 기술입니다. 그러나 시각과 청각이 모두 온전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한계를 지닌 것도 같습니다. 특히 갈수록 화려해지는 CG(컴퓨터 그래픽), 사진 기술, 매력적인 디자인들은 모두 시각적인 자극입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시각적인 효과를 더해 사람들의 집중과 선호도를 높이죠. 그러나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알 수 없는 정보’이며 때로는 ‘불필요한 정보’가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대체텍스트를 작성할 때 이미지가 가진 정보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영화제 관련한 소식과 정보를 더 많은 분과 공유하고자 대체텍스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작성자에 따라 사진을 설명하는 언어나 설명 되는 사진 정보의 양이 다르다는 한계가 있었지요. 그러다 최근 울림을 만드는 사람들, 울리미들 내부에서  더 나은 대체텍스트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울리미들이 그 제안에 동의하였고 더 나은 대체텍스트 작성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여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각자 대체텍스트를 조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주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 좋은 대체텍스트란 어떤 것인가? 둘, 성별이분법적이고 시각 중심적인 표현을 벗어나 사진을 묘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회의 당일, 울리미들은 많은 고민과 배움을 안고 온라인 채팅방으로 모였습니다. 그동안 대체텍스트를 쓰면서 어려웠던 점과 애매했던 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지요. 첫 번째로 합의한 내용은 ‘사진 선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진은 글과 완전히 별개의 요소가 아니라 글을 구성하는 하나의 정보로 전달됩니다. 따라서 대체 텍스트는 간결, 명료하여야 한다는 게 논의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기준으로, 사진을 선정할 때 글의 맥락을 고려한 사진을 고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울림과 서울인권영화제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은 서울인권영화제의 현장 분위기를 공유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진을 고르느냐 만큼 사진을 어떻게 설명하느냐도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또한, 사진을 설명할 때 선택하는 표현들이 서울인권영화제의 지향을 드러내 주기도 하므로 더욱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지요.

첫 주제는 성별 표현이었습니다. ‘인물을 설명할 때 성별을 통한 설명이 적절한 것일까?’라는 고민이 시작이었지요. 저희는 성별을 판단하는 근거가 주로 외형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성별 정보를 제외한 인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성별이 중요한 정보가 되는 사진에 대해서는 성별 표현을 쓰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떠한 인물이 웃고 있는 사진에서 굳이 “한 여성/남성이 거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고 쓸 필요는 없습니다. 반면 영화 스틸컷을 인용할 때, 영화의 내용 상 인물의 성별정체성이 중요한 경우 대체텍스트에서 성별정체성은 중요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그림1. 서울인권영화제 23회 울림 5호 중 활동가 승님의 ‘카드뉴스, 아련한 느낌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에 삽입된 사진과 설명. ‘슬라이드에 띄워진 카드뉴스를 보며 자원활동가 나현이 제작방식을 설명하고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사진 속 인물 설명은 생김새를 묘사하는 대신 그 사람의 이름으로도 될 수 있다.]

 

 

[그림2. 서울인권영화제 23회 울림 5호, 활동가 은진 님이 쓴 ’함께나눠요-그녀는 살고 싶었다.’’에 삽입된 그림. ’사진1. 서울인권영화제 21회 상영작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 스틸컷. 브라질의 한 여성인권 활동가가 화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다. 인물의 외모나 성별 대신 ‘여성인권 활동가’라는 영화 내용 상 중요한 정체성으로 인물을 설명했다.]

 

 

그다음 고민은 색상, 무늬, 크기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중요한 정보인가 아닌가에 따라 설명의 필요성이 달라진다.’는 당연해 보이는 결론이 나왔는데요, 그 과정에서 ‘색상이 가진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색의 옷이라 할지라도 어떤 인물이, 어떠한 상황에서 그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색이 가진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이름과 직책 또는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 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도 같은 고민이 적용되었습니다. 같은 인물의 사진일지라도 어떤 사진에선 그 사람이 가진 정체성이 중요한 정보이고 어떤 사진에선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 사진이 담으려 했던 내용을 잘 담아낸 설명이 된다는 것이지요.

 

대체텍스트를 작성하면서 모두가 거쳤던, 또는 매번 겪는 곤란함이 있었는데요, 바로 ‘어디까지 설명하느냐?’였습니다. 무심코 보는 사진은 많은 정보를 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진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정보투성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색상부터 생김새, 작은 물건들과 그 위치까지. 설명하고자 하면 해야 할 것이 정말 많지요. 저희가 생각한 설명의 범위를 결정할 기준은 하나. ‘그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였습니다.

제가 이 논의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사진은 단순한 ‘휴식을 위한 이미지’가 아닌 내용을 가진 ‘정보’라는 것을 간과해왔다는 점입니다. 사진을 정보로 접근하게 되면 글 속에 삽입하는 사진을 선정할 때 다른 고민을 하게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논의 끝에, 사진을 설명한다는 것은 글을 쓰는 과정의 일부이므로 글의 주제와 맥락을 잘 아는 사람이 써야 하는 작업이라는 공감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대체텍스트는 꼭 글쓴이가 쓰되 다른 사람들은 꼼꼼히 대체텍스트를 읽고 피드백하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대체텍스트를 작성하는 방법도 정리해봤어요. 이 내용은 23회 서울인권영화제의 상영작 화면해설을 함께 하시는 감독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0. 대체텍스트 입력 양식은 [그림1. 대체텍스트 내용]으로 한다. 글에 항상 ‘사진’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경우를 포괄할 수 있는 ‘그림’으로 통칭한다.

1. 필자가 보이는 대로 전부 작성한다.

2. ‘그림’이 없다는 가정을 하고 소리 내어 읽어보고 수정한다.

3.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받고 수정한다.

4. ‘그림’ 없이, 대체텍스트를 포함한 전체 글을 읽어도 어색함 없이 이해되는지 검토하고 수정한다.

 

 

이번 논의를 통해 ‘좋은 대체텍스트’란 항상 과정으로 존재하며 때문에 꾸준한 고민과 수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울림 회의 때 대체텍스트만을 위한 회의시간을 따로 떼어 놓기로 했어요.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지는 울림과 서울인권영화제 SNS의 대체텍스트에 관심 가져주세요. 그리고 적극적인 피드백에 함께 해주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