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친구들에게!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5/23
친구들에게!
안녕하세요 여러분, 자원활동가 윤리입니다! :) 제가 지내는 곳은 날이 점점 추워져 오늘 옷장 안에 있던 극세사 이불을 꺼냈어요. 같은 행성에 살고 있는데 전혀 다른 계절을 살고 있다니 매번 느끼지만 참 신기해요.
어제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뜻밖의 문자를 받았어요. 어떤 부당한 일에도 제대로 분노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그래서 제대로 화낼 줄 아는 너를 지켜보면서 멋있다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본인이 했던 과거의 말을 사과하고 싶었다고요. “네가 보기엔 그랬구나, 근데 나는 그 시간들 내내 너 같은 말을 했던 사람들 때문에 죽고 싶기도 했어.”라고 말을 해줄까 하다가 그냥 “그랬구나, 잘 지냈니?” 하고 말았어요. 죽고 싶었던 시간들을 떠올리기 보다 그냥 이런 말들을 들을 수 있는 것 덕분에 그래도 살만하네, 하는 마음이 오늘은 이겨서 그냥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어요.
사실 어제만이 아니라, 저는 요새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이런 저런 마음들이 다투다가 이기고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온갖 못되고 나쁘고 부정적인 마음들과, 그래도 꽤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들과, 무기력하고 부유하는 마음들과, 혹은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그런 마음들… 어떤 마음들이 지고 어떤 마음들이 이기는지 이 마음이 이겨서 나는 오늘 이렇게 할 수 있었고 그런데 저렇게 할 수는 없었구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언제나 여러분을 생각할 때는 다정한 마음들이 훨씬 더 쉽게 다른 마음들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힘들게 고민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댈 필요도 없이 내 안의 다정한 마음들이 쉽고 크게 자리를 잡아요.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행여나 힘들지는 않을지 걱정되며, 좋은 것을 보고 들으면 나누고 싶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응원하고 싶은 당신들 덕분에 내 다정한 마음들이 방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다정함이 당신의 기댈 구석이라 말해준 덕분에, 나 역시 당신들에게 기꺼이 다정함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그리고 그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보고싶고,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는지도 다 말해주고 싶네요.
벌써 5월도 다 지나가고 있고, 영화제는 불과 몇 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어요. 아마 여러분은 이 글을 다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쁠지도 모르겠네요! 도움이 되는 처방일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바빠서 지치고 힘들 때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여러분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그럼 보고싶은 친구들, 조만간 얼른 만나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