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다정한 시간을, 미뤄온 그 마음을요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5/30
다정한 시간을, 미뤄온 그 마음을요.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괜찮냐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 날들이에요. 자기 전 인사를 나눌 때, 좋은 밤이 되라는 글자를 치다가 끝내 지워요. 아침에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하루 되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아요. 괜찮을 수 없던 순간들과 괜찮을 수 없는 사람들이 스쳐 갔거든요.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날들이 너무 길어서였을까요. 이걸 핑계 삼아 나는 당신에게 건네고 싶었던 다정한 말들을 미뤄왔지요. 실은 많이 궁금했어요. 아픈 곳은 없었는지, 새로 머무르게 된 곳은 어떤지, 그 얼굴들 그대로인지, 또 누가 여길 찾았는지, 어떤 이야기들 나누는지. 옆에 붙어 이것저것 묻고 싶었죠.
많이 돌아왔지만, 왔어요. 다시. 이제는 미루지 않으려 해요. 혼자 마음을 쌓아가는 게 아무 소용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 마음이 차고 넘치기 전에요.
어떤 노랫말처럼 내게 세상은 너무나 빨랐는데, 여기서는 숨이 가쁘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우리는 우리의 속도가 있었고, 그 속도를 나는 좋아하곤 했죠. 서로를 알아가는 속도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속도도. 조금 느린 우리의 속도를요. 서두르지 않기로 했어요. 어서 닿길 바라지만,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어요. 이내 닿을 테니까요.
찾지 못하던 날이 길어, 새로 오르는 길은 많이 낯설었어요. 조금 낮아졌지만, 여전히 언덕을 올라야 만날 수 있어요. 언덕이 참 싫었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오르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들뜨지 않게 마음을 가라앉혀요. 고양이가 다리 사이를 지나다니는 일은 아직 낯설어요. 언제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기억하던 우리, 오류인지 묻던 우리, 불온하라던 우리. 이번에는 소란이 되어 뜨거운 날을 채우겠지요. 내려가는 길에는 그날들을 그려보곤 해요.
모아두었던 단어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던 말이 또 달아났나 봐요. 오래 볼 수 있을 테니까, 꺼내지 못한 말들은 그때 또 가지고 올게요.
그럼, 이만 쓸게요. 부디 괜찮은 밤이 되길 바라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지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