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편지) 우리는 서로의 일기장이 되었습니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7/12
게으른 내가 올해 기어이 들인 습관이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연초에는 아무리 피곤하거나 취하거나 지쳐도 한 줄이라도 쓰고 잠에 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어떤 하루를 보면 “안 나던 술병이 나서 고생했다”, “퇴근하고 덕희랑 영상통화했다” 따위의 문장 한 개로 요약되는 날들이 있다.
사실 일기를 쓰는 건 위로 받고자 내가 하는 수많은 행위들 중 하나일 뿐이다. 연필이 가는 대로 아무 말이나 적어보면서 혼란한 마음을 토해내고 평온을 얻고자 한다. 그렇게 한 장씩 쌓여가는 시간들을 보며, 아 나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구나, 내게도 살아 온 역사가 있구나, 하고 언젠가 위안을 얻기 위해 쓴다. 올해 일기를 열심히 쓰려 했던 것은 그만큼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것 아닐까.
그렇게 열심히 쓰던 일기장을 6월이 끝나갈 무렵 펼쳐 보니 대략 한 달이 조금 안 되게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무얼 하고 있었는지 별달리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영화제 준비로 막 바빠지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두근대며 영화를 틀고, 폐막 뒤에 정신 없이 놀고 정신 못 차리고 쉬던 시간들이었다.
올해는 어찌어찌해서 영화제에 처음부터 참여를 못하고 늦게서야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 시작무렵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사 간 새 사무실에서는 처음 잤다. 큰 도움은 못 돼도 나름의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기분은 항상 생명력을 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방향을 위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사무실과 공원에서 보낸 시간들 동안, 일기를 펼쳐보지 않았던 시간들 동안, 영화제 활동가 한 명 한 명과 영화제의 영화 한 편 한 편이 내게는 일기장이었다. 아무 말이나 털어내고 아무 말이나 듣다 보면, 우리는 좋아하는 것도 살아가는 방식도 다 다르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언젠가 그 순간들을 펼쳐보면 아 우리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구나, 우리에게도 살아 온 역사가 있구나, 하고 위안을 얻을 것 같다. 서로 다른 리듬과 서로 다른 멜로디로 부르는 노래가, 서로 다른 필체와 서로 다른 낱말들로 적어가는 글들이, 결국 각자가 조금 더 즐거울 수 있는 세상에 위안이 되고 보탬이 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