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활동펼치기)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저희집 고양이는 수다쟁이입니다. 저는 한국인간어(개중에서도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만 겨우)를 할 줄 아는데 그분은 한국어도 아닌 말로 제게 뭐라고 합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대화를 시도하는 얼굴, 꼬리가 움직이는 모습, 밥그릇 현황이나 주변 인간 상태 등 주위가 어떤지 알아차리면, “이-야-옹”하는, 인간 언어로는 짧은 몇 음절이 모든 의미를 담은 말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언어는 작은 단서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이후에야, 언제 어디에 어떻게 말했는지 그 상황을 살핀 이후에야, 의미를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같은 종 동물에게 더 많은 걸 기대하기도 합니다. 의미가 무사히 가 닿고 서로를 이해하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그런 희망이 모두 깨졌습니다. 홍대에서 있었던 몰래카메라 사건은 징역 10개월을 받았습니다. 뒤이어 안희정 전 경기도지사는 1심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젠더이분법과 철저한 남성 우위의 젠더 권력으로 찌들어 그 외의 사람에게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누구였고 왜 그랬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는지는 잘려나가고 ‘몰카’와 ‘섹스’만 남았습니다. 배경은 다 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의미를 만드는 것들은 날아갔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는 진공 속에서 살던 사람들 같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국이라는 배경이, 억눌러왔던 분노나 살아남기 위해 숨죽인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거겠지요.

 

온갖 차별이 만연한 세상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내가 말하는 것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고 내 목을 조를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자 충격이 컸습니다. 며칠을 무기력하게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18일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집회로 향했습니다. 영화제 활동가들도 각자 집회 장소에 함께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음에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림1: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집회 현장이다. 집회 참가자가 들고 있는 붉은 손피켓에 “안희정은 유죄다”, “#METOO #WITHYOU”라고 쓰여 있다. 멀리 앞쪽 무대 스크린에는 발언자와 수어통역사가 비춰지고 있다. 피켓 주위에 참가 단체들의 이름이 쓰인 깃발들이 흔들리고 있다]

분노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발언자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100명의 가해자와 100명의 피해자가 있다면 100가지의 가해, 100가지의 피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형적인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집요하게 밝히려 하는 재판부와 달리 실제 사람들은 다 다른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각자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실제 사람들이 누구인지 고민 없는 세상은 그날의 구호처럼 정말 “못살겠다 박살내자”였습니다. 그날 무대에서 최영미 시인은 마야 안젤루의 시를 읽었습니다.

“너는 나를 아주 더럽게 짓밟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먼지처럼, 나는 일어날 거야.”

힘없어 보이는 먼지는 쌓이고 일어나 결국 공간을 바꿉니다. 매일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여성을 위한 국가는 없지만 그 국가에 쌓여가는 변화는 아마 매일 치워도 계속해서 생겨날 우리일 것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