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기다리는 분들께

2019년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기다리는 분들께

<2019년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기다리는 분들께>

 

2018년 23회 서울인권영화제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을 마치고, 영화제 활동가들은 앞으로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을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만들어가야 할지 영화제 이후에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의하였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나누며 영화제를 함께 만드는 여러 인권활동가과도 소통하며 서울인권영화제 활동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기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힘들었던 오랜 논의 끝에 서울인권영화제를 격년으로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는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개최하지 않습니다. 2020년에 24회 서울인권영화제가 개최됩니다. 2019년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기대하고 계신 많은 관객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단순히 재정 부족, 활동가 부족만으로 내린 결정은 아닙니다. 아래 적어 내려갈 이야기처럼 일 년에 한 번이라는 개최 주기는 서울인권영화제가 만들고자 하는 ‘인권영화제’에게는 숨 가쁜 호흡처럼 느껴졌기에, 우리는 이제 숨을 들이쉬고, 영화제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인권활동을 놓치지 않으며 영화제라는 인권활동을 함께 해보려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서울인권영화제가 매년 재정적으로 흔들리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공간 대관에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꼭 지켜온 원칙이 있습니다. ‘무료상영’과 ‘정부와 기업 후원을 받지 않는 것’, ‘등급 분류를 거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모든 원칙은 ‘인권영화는 누구나 차별 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며 인권단체로서 영화제를 만들어온 원칙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해를 거듭하며 여러 방면으로 확장되어왔고, 장애인접근권에 대한 고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활동에 대한 고민, #Metoo와 영화제라는 역할이 어떻게 만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이스라엘에 대한 BDS활동에 함께하며 창작물이 생산되는 권력구조에 저항하는 활동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매년의 영화제는 연례행사를 넘어서서, 매년 새로운 인권 의제를 영화제라는 방식으로 어떻게 다루고 풀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영화제 활동은 인권 영화를 상영하는 것, 그리고 어떤 영화를 상영하지 않고 왜 상영하지 않는지를 이야기하는 것, 매년 새로운 활동가가 인권활동가로서 함께 의지하고 자라나가는 것, 인권활동과 관객의 사이를 좁히는 것, 모든 상영과 대화를 더 접근성이 높은 방식으로 만나게 하는 것, 어떤 공간에서 상영할지 논의하는 것, 어떤 공간에서 어떤 언어를 가지고 어떤 관객들과 만날지 고민하는 것…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활동이 되어갔습니다.

 

어떤 ‘인권영화’를 ‘얼마나 자주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상영하는가가 ‘인권영화제’에서 중요한 활동으로 여겨져 왔다면, 서울인권영화제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어 통역을 영화에 넣는 것에 있어서도 영화의 내용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 없는 방식의 수어 표현을 논의하고 제안하고 만들어 왔습니다. 화면 해설을 넣는 것에 있어서도 단어 하나하나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없이 고쳐가며 만듭니다. 인권활동을 소개하고 영화의 대화를 만들어가는 자원활동가 또한 그 의제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활동에의 연대로 그날의 기억을 이어갑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그리는 인권영화제와, 과정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원칙이, 누구는 영화제로서 말도 안 되고 너무나 느린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렇게 느리게 영화제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느림을 지켜가며 앞으로의 영화제를 함께 그리자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며, 고민들을 하나씩 더 큰 고민으로 이어가고, 함께 자라나는 것은 서울인권영화제의 로고처럼 푸르고 힘찬 발걸음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기도 했습니다. 무료상영 영화제이자, 정부·기업의 후원이 없는 단체라는 형태로 ‘영화제’를 이어가는 것은 실제로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영화라는 매체와 영화제라는 활동은 어떻게 보면 자본과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자본을 한순간에 쏟아내는 활동이 과연 인권활동일까? 이런 활동이 지속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여럿이 함께 영상을 보거나 들으려면, 최소한의 장비와 공간, 작품 수급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실내상영을 하거나, 영화제 규모를 매우 축소한다고 해도, 영화제라는 방법상 ‘돈을 쓰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매해 5월 영화제를 개최한 후 다음 해 초까지는 영화제를 치른 빚을 갚아나가는데 몰두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다시 5월에 수천만 원의 빚이 생겨납니다. 이 과정에서 상임활동가의 활동비는 증가한 적 없이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최저임금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활동비는 수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전에도… 항상 마이너스 재정으로, ‘힘들어도 영화제를 매년 개최해왔으니, 올해도 영화제를 개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다는 이유로 고민을 미루고 영화제를 계속하다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활동으로서 영화제가 아니라, 서울인권영화제라는 이름의 영화제를 개최하기 위한 업무를 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격년으로 개최하자는 결정은 서울인권영화제가 단순히 축제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과정 하나하나가 인권활동인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들을 더 세밀하게 의미를 곱씹으며 나아가기 위해, 장애인접근권을 제대로 보장하면서도 함께 하는 활동가들을 살피기 위해, 하나하나 내실을 다지며 서울인권영화제를 함께 만드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합니다.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으며 활동을 모으고 기획하는 중심인 상임활동가의 활동비 보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몇 회 서울인권영화제’만이 서울인권영화제의 인권활동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을 쓰면서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이 고민이 됩니다. 활동하면서 작성하게 되는 여러 글 중에 가장 어렵고 죄송하면서 괴로운 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처럼 올 한해도 영화제 활동을 지지하는 마음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려봅니다. 2019년 올해는 ‘24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아니라, 서울인권영화제가 펼쳐 나가는 다른 활동에 함께 해주시기를 기대해봅니다.

 

1996년부터 쌓아온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을 모두 담으며 영화제 활동이 각 시기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본 글에 굳이 담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지금, 2019년 서울인권영화제는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9년, 서울인권영화제는 장애인접근권 실현을 위해 영화제가 해왔던 활동들을 점검하고 정리하며, 사례들을 조사해 장애인접근권이 실천되는 더 나은 활동을 기획하고자 합니다. 장애인접근권은 각지의 영화제뿐 아니라 모든 행사에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해외 인권영화제를 방문하고, 인권영화제를 함께 만드는 장애인당사자를 만나고, 이미 이러한 고민을 활동 안에서 실천하고 있는 많은 인권활동가들을 만나서 고민을 다듬어내, 결과물로 모아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인권영화 상영을 완전히 멈추는 것 또한 아닙니다. 정기상영회, 상영지원 등의 활동을 통해 인권영화가 필요한 여러 장소에서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상영을 이어갑니다. 지난 상영작은 분류하고 여러 주제별로 키워드를 아카이빙하여, 인권영화의 흐름을 알아보고, 현재에도 유효한 인권의 이야기들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합니다. 많은 곳에서 생겨나고 있는 인권영화제들과 영화제의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지점을 공유하는 인권영화제 네트워크 활동 또한 오랜 시간 지속해온 인권영화제로서 꼭 하고자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권단체로서 어떤 활동을 실천하고 어떤 활동에 더욱 연대의 힘을 쏟을지 집중적인 논의를 하는 것도 ‘몇 회 영화제’를 하는 것에서 조금 자유로워진다면 더욱 하고 싶은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울인권영화제의 2019년을 상상하는 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느리고, 불안하고, 여전히 조심스럽고 힘든 발걸음이지만, 인권영화제로서 인권의 가치들을 지키며 가야 하는 길로 가보고자 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 후원활동가님도, 인권활동을 함께하는 동지들도, 그리고 서울인권영화제를 지켜봐 주신 지지자분들, 관객분들도, 부디 이 길에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곧 만나 뵙기를 기대합니다.

 

  •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국내작 공모는 2019년 10월경부터 시작됩니다. (추후 공지)

  •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함께 만들기 위한 새로운 자원활동가 모집도 2019년 10월경부터 시작됩니다. (추후 공지)

 

2019년 2월

서울인권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