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편지) 담배, 고양이 그리고 서울인권영화제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9/11/20
겨울이 오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면, 현타가 오는 계절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까지 담배를 피워야 한다니…’ 생각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는 꼬박꼬박 피우고 있습니다.
네? 왜냐고요? 그런건 물어보는 거 아닙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는 겨울을 참 좋아했어요. 눈이 오면 아침 8시부터 나가서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놀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 되면 스키장조차 가기 싫어요. 추운 건 너무 어렵고 무서운 일이더라구요. 순식간에 얼어붙고, 손발이 조금씩 차가워지면 감각이 약간 무뎌지고, 그러다가 또 난방이 되는 실내에 들어가면 갑자기 잠이 쏟아지고.
그래서 그런가 아침에 그렇게 일어나기가 싫더라구요.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꽤 일찍 일어나는 편입니다. 왜냐고요? 저는 요즘 고양이랑 함께 살고 있거든요. 5시, 6시만 되면 온 집안을 다 돌아다니는 고양이 두 마리 입니다. 그 시간이 되면 잠에서 깨는지 꼭 온 집안을 다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꼭 제 머리맡에 와서 저를 부르거나, 비닐을 씹거나, 종이를 뜯거나..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저를 깨웁니다. 목적은 단 하나! 아침밥이죠. 제가 부수수수 일어나서 잘 뜨지도 못한 눈으로 사료를 밥그릇에 옮겨 담으면 정말 조용해집니다. 그러면 저는 다시 자요. 2-3시간쯤 자고 7-8시쯤 일어나면 고양이 두 마리가 저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는 모습이 흥미로운가 봐요. 제가 일어나면 (아마도)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일어나면 꼭 아침밥을 해먹습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아침밥을 먹고 안 먹고가 하루의 에너지에 많은 차이를 주더라고요. 밥을 먹고 나서는,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한대 피웁니다. 그러면, 아침을 해먹었다는 뿌듯함과 이렇게 추운데 굳이 담배를 피운다는 현타의 사이 어딘가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네? 이게 서울인권영화제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음….
저의 집에서 영화제 사무실은 아주 가깝습니다. 걸어서 15-20분 정도예요. 하지만, 가는 길에는 거의 산을 넘어야 합니다. 여름에는 더워서, 봄 가을에는 가팔라서 가기 싫은 길입니다. 겨울에는 산을 넘어가는 상상을 하면 꼭 추울 것만 같은데, 왠걸. 가는 길에 추위 따위는 찾아올 새가 없습니다. 아주 따스하죠. 그래서 그런가, 산을 건너 영화제 사무실에 도착해서 피우는 담배는 현타를 유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길다면 긴 글의 마지막은, 역시 담배입니다. 대세는 수미상관이니까요. 저녁에 영화제 사무실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현타로 시작한 하루를 뿌듯하게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잠들기용 담배(침대에 눕기 전에 피는 담배)도 현타 없이 뿌듯하게 필 수 있죠. 저의 뿌듯한 담타(담배타임)을 위해 2020년의 서울인권영화제도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