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2019 이룸영화제 ‘절망을 감추는 욕망, 욕망을 만드는 도시‘ – 영화 <혐오의 시대> 후기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9/11/20
안녕하세요,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윤리입니다!
저는 지난 11월 10일에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주최하고 2019 이룸 영화제 기획단이 주관한 2019 이룸 영화제 ‘절망을 감추는 욕망, 욕망을 만드는 도시‘에 다녀왔습니다. “다양한 위치의 개인들이 현재 한국 성산업 현장을 직면하며 그 공간과 권력관계를 중층적으로 읽을 수 있는 방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하는 취지 하에 선정된 다양한 여러 작품들 중 특히 섹션2 ‘한국, 아시아, 성산업: 젠더화된 빈곤의 풍경’의 상영작이었던 <혐오의 시대(Call Her Ganda)>를 관람하고 왔어요.
[그림1. 이룸영화제의 슬로건 “절망을 감추는 욕망, 욕망을 감추는 도시"가 적힌 배너가 서 있다.]
<혐오의 시대>는 2014년 필리핀 올롱가포 시의 모텔에서 발생한 트랜스젠더 여성인 제니퍼 라우데의 사망 사건에 대한 영화입니다. 살해의 유력한 용의자로 미 해군인 조셉 스콧 팸버튼이 지목되고, 필리핀과 미국이 맺고 있는 정치적 관계에 대한 문제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등 다양한 이슈들이 중첩되어 있는 사건을 필리핀계 미국인 트랜스젠더 저널리스트의 취재기처럼 풀어나갑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여러 관점들을 통해 이 사건을 말합니다. 누군가는 제니퍼의 죽음 이후 가해자가 미국 정부로부터 비호받는 것을 보며 미국과 필리핀 사이의 불공정한 VFA(Visiting Forces Agreement 방문부대 지위협정)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누군가는 제니퍼의 죽음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이며 트랜스젠더 공동체 안의 친구들은 이런 혐오로 인해 끊임없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이 사건이 간다(제니퍼의 애칭으로 ‘아름답다’ ‘미인’이라는 뜻의 타갈로그어)의 꿈을 앗아갔다 말하고, 누군가는 이 사건이 간다와 비슷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간다의 죽음은 이 모든 것 중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이 모든 것 자체에 가까울 겁니다. 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정체성들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나마 내가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방법으로 타인의 위치를 가늠하곤 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간다의 위치와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또 우리의 위치는 왜 여기일까 등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위치한 곳까지 있는 계단이 어떤 부분에서는 비슷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지, 너무 쉽게 “너는 나다.“라고 말하려 하진 않았는지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강유가람 감독님의 진행으로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의 루인님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차차님이 씨네토크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많은 부분들도 그렇지만 특히 두 분이 공통적으로 말씀해주신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집단 안에 있으면서도 우리만의 삶의 맥락을 갖는 각자의 “나“이기 때문에 그 개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차차님이 필리핀의 국가화된 성산업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점도, 그 안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갖는 위치는 또 어떤 특수성이 있는지 말씀해주신 부분도 좋았습니다. 깊은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림2. 무대 위 왼편에서 수어통역사가 수어통역을 진행 중이다. 그 옆으로는 진행자, 패널 두 명이 앉아 씨네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무대 배경 스크린에는 영화 <혐오의 시대>와 토크 패널들의 간단한 정보가 적혀 있다.]
2019 이룸영화제에서는 장애인접근권을 위해 자막과 수어 통역 화면이 영화에 삽입되어 있었고 AUD 협동조합을 통한 문자 통역과 수어통역협동조합의 현장 수어 통역으로 씨네토크가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혐오의 시대>에는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인 남선이 번역으로, 고운과 레고가 자막과 수어 통역 화면 편집으로 참여하기도 했고요. 서울인권영화제에서도 봐왔던, 당연하지만 왜인지 쉽게 만날 수 없는 풍경이라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2019 이룸영화제는 11월 10일에 막을 내렸지만, 언젠가 또 다시 열릴 이룸영화제에 대해 충분히 기대하게 될 만큼 좋은 영화들과 토크로 가득했으니 여러분도 모두 함께 다음 이룸영화제를 기다리기로 약속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이룸영화제 분들, 다음 번엔 2020년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만나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