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편지) 사랑과 용기를 담아!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9/12/04
안녕하세요! 자원활동가 은긍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사무실을 방문했었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지만 역에서 사무실 가는 길까지는 외울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사무실에서 역으로 가는 길부터 천천히 채워나가려 합니다.
저는 저를 얼음처럼 꽝꽝 얼려도 표정 하나에 와르르 녹아버리고는 해요. 사주를 봤을 때에는 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말이에요. (ㅋㅋ) 나를 지키는 일과 온전히 존재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놓고 조금만 벗어나도 쉽게 등을 돌리곤 했어요. 망쳐버리는 것보다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의 모습에 실망해 도망가 버릴까 봐, 다시 관계를 쌓아 나가야 할까 봐 불안한 마음도 컸어요.
얼마 전에 저는 자꾸만 다시 태어나는 꿈을 꿨어요. 한 번은 검정색 뱀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고 제가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람은 마지막 숨을 뱉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의 맨 발바닥을 보며 더 빨리 만들어지려고 애를 쓰다가 잠에서 깨어났어요. 사람도 아니고 뱀으로 태어나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보아야 했기 때문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같은 숨을 쉬고 싶어 애쓰는 마음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아마 맨발의 그 사람도 함께 숨을 쉴 수 있었다면 뱀이 된 나를 목에 감아주었을 거라고 무용한 상상을 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정해놓은 내 모습이 아닐 때가 더 많겠지만 사랑하는 마음과 애쓰는 마음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자원활동을 하면서도 단단한 사람이 되지 못할 때가 더 많겠지만 우리 향하는 시선이 같으니 조금 안심해도 괜찮겠죠? 녹아 흐를 수 있는 용기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
이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조금 부끄러워서 말이에요) 저는 세상에 균열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여전히 그렇구요! 하지만 미운 마음을 노려보는 일이 다여서 무력해질 때면 아무것도 쓸모가 없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을 시작하고 제 말과 생각이 어디엔가 닿을 수 있다는 걸 보고, 함께하는 마음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이젠 같이 살아보자고 조금은 용기 내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고 여전히 사는 게 어렵지만 말이에요. 우리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내 보아요. 그러다 미지근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사랑과 용기를 담아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