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만연한 혐오의 정치, 그곳에서 ‘불온한 당신’을 만나다

(함께나눠요) 만연한 혐오의 정치, 그곳에서 ‘불온한 당신’을 만나다

2019년 11월 12일, 국가인권위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40여 명의 의원에 의해 발의됐습니다. 개정안에선 ‘성적지향’을 삭제하고, 성별의 개념을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고, 변경이 어려운 생래적, 신체적 특징으로서 남성 또는 여성 중의 하나를 말한다’고 정의하며 말이지요. 이 기가 막힌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2년 전 대선 토론 때와 마찬가지로 ‘동성혼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11월 28일에는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는 가족다양성 정책 관련 포럼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사유는 여성가족부가 토론자에게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빼라’며 부당한 요청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한 달에 걸쳐 발생한 일을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함이 고조되었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혐오표현인데도 왜 이렇게 불안한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데 힘을 실어준 제21회 서울인권영화제 “나는 오류입니까”의 상영작 <불온한 당신>을 공유합니다.

영화 <불온한 당신>의 메인 포스터. 이묵 씨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고 있는 사진에 영화의 제목 <불온한 당신>이 크게 쓰여있고, ‘여자를 사랑한 사람’이라는 텍스트가 작게 세로로 쓰여 있다. 거울에 비친 이묵 씨의 얼굴 옆에 ‘좋아! 오늘의 내가’라는 텍스트가 세로로 쓰여 있다.

[그림1. 영화 <불온한 당신>의 메인 포스터. 이묵 씨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고 있는 사진에 영화의 제목 <불온한 당신>이 크게 쓰여있고, ‘여자를 사랑한 사람’이라는 텍스트가 작게 세로로 쓰여 있다. 거울에 비친 이묵 씨의 얼굴 옆에 ‘좋아! 오늘의 내가’라는 텍스트가 세로로 쓰여 있다.]

영화 <불온한 당신>은 1945년에 태어나 ‘바지씨’로 살아온 이묵씨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여성이라 느끼지 않고, 여성을 좋아하는 이묵씨. 2014년, 자신의 삶을 궁금해하는 이영 감독에게 자신의 역사, 같은 시간을 경유하고 만났던 치마씨-바지씨의 역사를 함께 엮어 전합니다. 이묵씨의 당당한 기세 앞에서 낙인과 차별, 혐오가 한풀 꺾여 들어간 것 같지만, 레즈비언으로 사는 건 녹록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자와 여자가 연애한다는 이유만으로 수군거리고, 당시 성북구 보문동에서 "여운회"(여성운전자회)라는 레즈비언 단체를 만들려고 했으나 때는 박정희 정권 시절, 끈끈한 응집력과 단합 때문에 단체 설립 허가가 나지 않아 결국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마음대로 못살아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걸 보아서는요. 이묵씨는 지금은 여자끼리 손 붙들고 다녀도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앞으로도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묵씨의 시대에서 끝나길 바랐던 마녀사냥은 2013년 성북구를 기점으로 포착됩니다. 전국 기초자치구 중 최초의 인권조례인 ‘성북주민인권선언문’ 선포식을 시작으로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토론회,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퀴어퍼레이드까지 마녀사냥이 이어집니다. 근거 없고 차별적인 혐오세력의 발언은 정말 말이 통하지 않을 것만 같은 분노와 증오로 배출됩니다. 그리고 세월호를 “더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던 혐오세력은 2014년 퀴어문화축제 때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시국에 축제가 웬 말이냐”는 규탄 집회를 진행합니다. 성소수자, 세월호 사건 유가족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종북’이라고 낙인찍고, 문제제기하는 시민들을 ‘국가체제에 반대하는 빨갱이’라 낙인찍으며 말입니다.

통합된 단일한 민족, 정상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국민들은 박정희의 전신인 박근혜를 통해 국가발전을 해내야 하는데, 성소수자의 권리를 외치고, 세월호 사태를 진상규명하라는 요구와 같은 ‘하찮은 일’ 때문에 ‘큰일’이 막힌다고, 더뎌진다고 혐오세력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 내내 혐오세력은 ‘종북’, ‘빨갱이’를 놓지 않습니다. 불온한 존재들, 사상이 다르기에 현재의 체제에 반기를 드는 존재라고 낙인찍는 순간, 과거에 행했던 것처럼 이 존재들을 지워낼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게 국가주의를 담지한 혐오세력은 기독교의 성소수자 혐오교리와 맞물리고 활개를 펼칩니다. 이는 2014년 서울시민 인권헌장 폐기와 맞물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과의 간담회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보편적인 차별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망발을 통해 드러납니다. 영화에 나온 성소수자 단체와 시민단체(무지개 농성단)의 서울시청 점거는 이를 규탄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7년 대선 토론에서는, 현 대통령인 문재인 당시 후보가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이 없다는 답과 함께 차별에는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거나/동성애를 좋아하지 않거나/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 모순이라는 점을 구구절절 밝히기보다 혐오의 정치가 꼭 분노와 증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말조차 구태의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기대조차 안 되는) 자칭 ‘진보’라고 일컬어지는 인사들이 이러한 발언을 할 때마다 그 파급력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래된 역사를 바탕으로, 한국의 수많은 신도를 보유한 종교를 혐오의 수단으로 삼는 모습에 우려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모순으로 점철된 차별과 혐오가 그들의 권위와 권력, 자원을 뒷받침 삼아 상식으로 여겨져, 누군가를 차별하고, 누군가는 차별받기 때문입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미야기현에 거주 중인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은 가족이 아니면 실종신고조차 할 수 없기에, 자신들을 이해해달라는 커밍아웃이 아닌 자신들의 관계를 알리기 위한 커밍아웃을 했고, 반대나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목숨과 생명이 중요하기에 해야만 했다고 말합니다. 논과 텐의 입을 통해 듣기 전까지,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조심하라는 인사와 포근한 포옹은 이들이 무엇을 감당하겠다 다짐하며 얻어낸 것인지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이들을 만나러 가던 길에 나오는 내레이션이 맞물립니다. “세상은 보호받을 사람과 보호받지 못할 사람을 나누며 공존하기 힘든 곳이 되어간다.” 이들에게 ‘보호’는 성소수자로서 혐오 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자연재해 발생 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슬프고 답답하지만, 이들의 선택이 어떤 고민에서 나오게 된 결과일지 상상하자 그저 끄덕이고 응원하게 됩니다.

개개인의 삶에 녹아들어 간 혐오의 정치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정상적인 삶’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합니다. 그리고 한 줌 뿐이더라도 자신이 지닌 자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선택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또다시 ‘정상성’을 바라보며, 불협화음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불화’하게 될지 모릅니다. 영화에 등장한 혐오세력의 정치와 2019년 11월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도 적지 못한, 수많은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무수한 차별과 폭력이 만연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삶을 다시 톺아봅니다. 무엇을 담아가야 할지 차근차근 살펴봅니다.

70여 년간 평생 바지씨로 살아왔고, 앞으로는 후배들이 잘 살길 바라는 이묵, 자연재해로 많은 것이 달라진 삶과 차별을 감내하며 일본 땅에서 살아가는 논과 텐, 그리고 혐오세력에게 더는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의 삶이 여기 버젓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은 혐오에 푹 절어버린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불온하다’ 여겨지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무엇이 ‘불온’이냐고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질문에 가두지 않고 불온한 것은 혐오로 점철된 세상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재편하는 사람들과 스스로의 삶을 맞닿게 두어 나의 불온함, 체제에 어긋나고 순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못살게 굴지 않으며 어떤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 고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더 많은, '불온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