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지워지는 삶을 기억하는 일이

(활동펼치기) 지워지는 삶을 기억하는 일이

 담배 연기와 입김이 구분이 안 가 몇 번이고 숨을 뱉어보는 계절입니다. 연말과 함께 어느덧 세미나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다들 추위와 미세먼지와 번아웃으로 가득한 연말을 잘 살아내고 계신가요. 다행히 8주차 세미나가 있던 오늘은 며칠 만에 날이 맑고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버스에서 <말해의 사계절>을 보며 울컥거리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무실이 있는 언덕을 오를 수 있었는데요, 이번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우는 사람이 나온 걸 보면 모두에게 한없이 먹먹하기만 한 섹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세미나 ‘기억과 만나는 기록’에는 허스토리 출판부와 책방 달리봄의 소연님과 승리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서울대입구역에 위치한 페미니즘 책방인 달리봄에 대한 설명이나, “모든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다”라는 모토를 가진 허스토리 출판부가 진행한 사업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나 여성의 가슴과 몸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에 대한 소개를 거쳐 허스토리가 기록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요. 너무 보통의, 너무 극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나 세미나 중간중간 몇 번이고 눈물이 왈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뇌졸중에 걸렸는데도 징용에 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던 장면만은 그토록 생생히 증언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나, 이혼한 후 두 아이를 떼어놓고 돈을 벌기 위해 홀로 섬에 갔을 때 본 밤하늘에 대한 어머니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사람이 역사 속에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이 사람을 거쳐갔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세미나를 진행해주시는 허스토리와 달리봄의 책방지기님들이 그 기록의 주인공들을 ‘납작한’, 즉, 평면적인 인물로 보여주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하셨다는 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문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나 기억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기억하려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생각해보지 못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혹은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서 등등 기록하는 활동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경험들을 통해 점점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일 자체에 애정을 품게 되는 것 같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기억과 만나는 기록"의 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스크린에는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가 쓰인  화면이 영사되고 있다. 스크린의 글씨가 작아서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스크린 앞 길게 놓인 책상에 자원활동가들과 ‘달리봄’ 책방지기 두 명이 모여 앉아있다. 책방지기 두 명 중 한 명이 말을 하고 있다. 자원활동가들은 스크린을 보거나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다. 자원활동가들 중 한 명은 노트북으로 속기를 하고 있다.

[그림1. "기억과 만나는 기록"의 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스크린에는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가 쓰인  화면이 영사되고 있다. 스크린의 글씨가 작아서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스크린 앞 길게 놓인 책상에 자원활동가들과 ‘달리봄’ 책방지기 두 명이 모여 앉아있다. 책방지기 두 명 중 한 명이 말을 하고 있다. 자원활동가들은 스크린을 보거나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다. 자원활동가들 중 한 명은 노트북으로 속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나현님이 다음으로 나눠볼 주제를 소개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세미나의 주제는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록과 아카이빙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아카이빙이 어떤 사건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단순히 수집하는 활동이라면, 기록은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 어떤 사건의 흐름을 함께하는 행위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기록하는 일은 누군가의 삶을, 혹은 어떠한 사건과 그 사건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일이며, 그렇기에 기록에는 아카이빙과 달리 기록되는 삶의 고유함과 생동감이 담길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그리하여 또다시 이야기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기억과 만나는 기록’ 섹션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세션인지를 이야기함으로써, 서울인권영화제가 어떠한 기록을 통해 어떠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지에 대해 각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모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몇 줄로 요약하기엔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과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이 날의 마지막 발제를 통해 알게 된 점은, 서울인권영화제는 영화라는 ‘기록’을 통해 정치적인 언어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삶들을 기억하려는 치열한 노력의 한 형태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잊으라는 말과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며 지워지는 삶들이 존재합니다. 듣는 것도 지겹고 힘드니 그만 이야기하라는 주장으로 어떠한 기억들은, 어떠한 삶들은 자꾸만 지워집니다.

 

그러면, 이게 전부다. 충분하지 않다는 건 나도 안다.

그래도 보다시피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옛집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여주러

벽돌을 들고 가는 사람을 닮았다.

-Bertolt Brecht, “Motto” 中

 

 그런 사회에서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린다는 것은, 무너진 집의 벽돌을 보며 그 집을 기억하려 노력하는 행위와 닮아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의문하는 것. 잊힌 삶에 대한 기록을 보며 어떻게든 그러한 삶들을 기억하려는 것. 그것이 바로 ‘기억과 만나는 기록’ 세션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고, 서울인권영화제가 있는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하며 한동안 꽂혀있던 저 시를 다시 한번 떠올리는 밤입니다.

 

“아무도 내 삶은 못 알아주지”라며 읊조리던 김말해와 여러 삶들을 기억합니다.

 

p.s. 사실 퇴고를 하며 알게 된 것인데, 세미나가 있던 오늘은 이번 주에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저녁이었다고 느껴진 것은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이 그만큼 호젓한 곳으로 기억되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죠? 여러분에게 서울인권영화제가 어떠한 기억으로 남을지가 궁금합니다. 부디 여러분에게도 서울인권영화제가 하나의 온기로, 하나의 울림으로 남길 바랍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