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공간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방법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9/12/18
안녕하세요, 자원활동가 은비입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길의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가는 길이 점점 따뜻해지는 기분이에요. 처음에 서인영(서울인권영화제)에 왔을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이런 이야기들을 해도 괜찮을지를 고민하며 걱정하던 마음은, 저번주에 오셨던 활동가님이 이야기 해주셨던 일은 어떻게 되었을지, 건강이 나아지셔서 이번주는 더 좋은 모습으로 나오실 수 있을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눈치보고 꺼내 먹던 두유와 간식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활동가님들께 따뜻한 말을 한 번 더 건넬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겠지요?
지난 12월 6일 7번째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오늘도 우리는>과 <후쿠시마에 남다>를 보고 ‘삶의 공간’ 섹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하기 앞서 서인영은 삶과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삶, 공간,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과거의 기억은 비교적 어려움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제여서 영화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각자의 기억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영화 <오늘도 우리는>은 법에 따라 강제철거를 당한 아현동 포장마차와 신사동의 곱창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현동 포장마차의 할머니들과 우장창창 곱창집의 사장님은 몇 년째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비를 털어 길을 닦고, 비를 피하기 위한 천막을 세워 장사를 했고, 그곳에서 그들의 삶의 터전을 일구었습니다. 그 가게들은 단순히 그들의 생계의 수단을 넘어서 그들을 찾아주고 불러주는 손님들과의 연결고리이기도 했지요. 아현동 할머니들은 ‘아직도 눈을 감으면 문을 열고 이모~라고 불러줄 손님들이 생각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거리의 미관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임대 계약이 만료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고 용역들을 동원해 그들의 가게를 부숴버립니다. 그리고 터전을 빼앗겨 저항하는 상인들에게 자신들은 법대로 했을 뿐이라며 뻔뻔하게 대응합니다. 그들은 법이라는 명목 하에 상인들의 삶을 한순간에 파괴해버립니다.
이에 상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저항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간과 광장에서 끊임없이 소리 내어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광장과 공간이 침묵으로 압도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나도 나의 일상을 살고 싶다,’ ‘나는 그저 내 손님, 내 기억들을 가지고 딱 지금까지처럼 장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한밤중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기억들을 나누고 노래하며 악기를 치고, 촛불을 들어 밤을 밝힙니다. 그리고 함께 같은 공간에 모여 상처를 나누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어 나갑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모인 경의선 공유지에서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림1. "삶의 공간"의 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스크린에는 세미나 자료가 영사되고 있다. 스크린의 글씨가 작아서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스크린 앞에 일자로 길게 뻗은 책상에 자원활동가들이 모여 앉아있다. 세미나 발표를 맡은 자원활동가 나현이 일어나서 말을 하고 있다.]
영화 이야기를 나눈 후, 자원활동가들은 삶과 공간의 연관성, 그리고 삶이 흔들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공간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가 그 공간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그 공간에서 밥을 먹고 함께하는 것으로 그 공간을 채워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노래하고 즐거움을 함께하면서 연대나 투쟁의 막연한 무거움에서 벗어나 울음을 토해내고 고통을 해소하며 기억들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번째 영화 <후쿠시마에 남다>는 원전 사고 이후에 후쿠시마에 남아 그곳을 지키는 나오토씨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오토씨는 인적이 거의 없는 후쿠시마에서 동물들에게 밥을 주고, 골프를 치고 숲을 산책하며 길을 걷습니다. 나오토씨는 후쿠시마의 방사능이 언제 완전히 사라질지 알지 못하고 후쿠시마가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여전히 후쿠시마에 남아 그곳을 지킵니다. 그곳은 그가 자신의 삶을 보낸, 자신의 정체성이 남아있는 삶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원전은 이렇게 한 사람, 아니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공간을 한 순간에 파괴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에 나오는 뉴스의 앵커는 일본 정부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센다이 핵발전소를 재가동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일본 정부는 원전만한 대체에너지원은 없다라고 이야기하고 원전은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 안전은 도대체 누구의 안전인지, 어떤 안전인지, 영화를 보는 우리는 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본 후, 자원활동가들은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여러 명의 이야기가 아닌 나오토씨의 삶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던 영화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자원활동가님의 이야기를 빌려 말하자면 ‘백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닌 한 명이 죽은 백 개의 사건’이기 때문이죠. 또한 다양성과 연결성을 무시하고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발전과 경제의 논리에 대해 함께 분노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과 <후쿠시마에 남다>는 모두 국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자신의 삶의 공간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본 아래에서 개인들의 공간의 가치는 경시되고 공간에 담긴 기억, 추억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이 두 영화 모두 끊임없이 우리의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신의 삶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세미나에서 돌아온 후 이런 것이 서울인권영화제의 역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인영 사람들과 함께라면, 아니 앞으로 서울인권영화제에 와주실 모든 분들과 함께라면 사라져가는 삶과 공간에 대해서 좀 더 열심히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두 영화를 보며 이야기 나누고 함께 분노했던 것처럼 우리는 또다른 아현동 할머니들, 또다른 우장창창 사장님, 또다른 나오토씨의 삶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빠르진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우리들의 손길을 먼 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품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은 희망이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