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영화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모두를 위한 각자의 영화제’ 토론회

(소식) 영화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모두를 위한 각자의 영화제’ 토론회

 12월 15일 일요일, 한 해를 보름 정도 남겨둔 날이었지요. 종로의 독립영화상영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모두를 위한 각자의 영화제’라는 이름의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인디포럼 작가회의에서 기획한 이 토론회는 국내 영화제의 현 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다소 딱딱해 보이는 주제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발제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스크린에 행사를 소개하는 화면이 영사되어 있다. 스크린의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모두를 위한 각자의 영화제’라는 제목이 크게 쓰여 있고, 바로 밑에는 ‘인디스페이스’라고 작게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토론회의 시간과 날짜, 사회자와 발표자, 행사 진행 계획이 쓰여있다. 그 밑에는 ‘인디포럼’이라고 작게 표시되어 있다.

[그림1. 커다란 스크린에 행사를 소개하는 화면이 영사되어 있다. 스크린의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모두를 위한 각자의 영화제’라는 제목이 크게 쓰여 있고, 바로 밑에는 ‘인디스페이스’라고 작게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토론회의 시간과 날짜, 사회자와 발표자, 행사 진행 계획이 쓰여있다. 그 밑에는 ‘인디포럼’이라고 작게 표시되어 있다.] 

 

 24회 서울인권영화제가 2019년이 아닌 2020년에 열리게 되는 것처럼, 인디포럼 역시 2019년 개최를 2020년으로 기약했다고 합니다. 재정 위기와 더불어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결정이었습니다. 이런 여러 위기 상황 속에서 기획된 토론회에서 서울인권영화제에게 주어진 주제는 ‘영화제의 관례화 극복하기’였습니다. 저희는 한 영화제가 겪는 여러 위기와 문제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영화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어떤 원칙 아래 어떤 실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어떤 고민들을 거쳤고, 무엇을 위해 격년 개최를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기로 했습니다.

 

 실은 발제를 준비하며 걱정이 컸습니다. ‘영화제’에 대한 토론회에서 서울인권영화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여기에서 말하는 ‘영화제’에 서울인권영화제가 속하기는 하는 걸까, 서울인권영화제가 인권단체로서 가지는 정체성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상임 활동을 시작한 지 3개월 차인 새싹 활동가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영화는 누구나 차별 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제라고 불리는 것보다 인권단체로 불리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다시 말해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영화를 통해, 영화제를 통해, 소통하고 연대하는 인권단체입니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의 재정 독립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지킵니다. 매 회 새로운 프로그래밍을 고민하며 영화와 영화를, 존재와 존재를 만나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원봉사자가 아닌 자원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나름의 방식으로 인권활동가가 됩니다. 장애인접근권을 실천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서울인권영화제가 서울인권영화제로서 상상하고 실천해야 하는 활동들이 많습니다. 격년 개최를 결정한 이후로도 고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민들을 바깥에서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회 영화제와 비슷한 규모의 비슷한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들어가는 막대한 자본과 에너지, 시간 때문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비슷한 규모의 비슷한 행사 자체가 올바른 목표일까? 이번 회에는 어떤 영화들을 어떻게 프로그래밍해야 할까? 어떻게 모든 관객이 차별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할까? 어떻게 하면 영화제라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실천하고 상상할까? 이러한 고민들은 인권영화제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고민입니다. 영화제의 성격은 다르더라도 보다 많은 영화제에서 이러한 고민을 함께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발표와 토론에 임했습니다.

 

 토론회 당일, 세 시간 반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영화제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통계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지금 한국에는 190여 개의 영화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후원으로 넉넉한 재정으로 운영되는 영화제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영화제들도 많습니다. 그 해의 신작과 화제작을 상영하는 축제 형식의 영화제들도 있겠지만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영화제들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영화제들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문화운동, 관객운동, 혹은 저희를 비롯한 많은 인권영화제들처럼 인권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제라면, 어떤 원칙 아래서 어떤 활동들을 구체화해야 할까요? 꼭 영화제라는 형식으로 운동을 해야 할까요? 바꿔 말하자면, 영화제라서 더 잘할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이 있고 어떻게 해야 더 열심히 잘할 수 있을까요? 영화평론가, 영화제 종사자, 창작자로서 패널로 참석해주신 분들뿐만 아니라 객석에 계신 분들께도 여러 질문을 던졌습니다. 고민이 많아지는 자리였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와 인디포럼 모두 1996년도에 1회로 출발한 친구들입니다. 지금은 2020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요. 각 영화제가 지향하는 방향성이나 이것을 구체화하는 활동 방식도 달라졌을 것이고, 관객들이 영화제에 가는 이유 혹은 가지 않는 이유도 달라졌을 것이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파급력 역시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넷플릭스 이야기를 하며,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런 스트리밍 서비스가 그것을 망친다고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한국영화 혹은 드라마의 대사와 소리정보가 담긴 한글자막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차가 높은 계단을 올라 객석까지 갈 필요도 없지요. 단순히 밖에 나가 영화관까지 가기 귀찮아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만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변화를 인지함과 동시에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인권영화제들에게만 인권영화라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화가 진정 예술이라면, 진정 문화가 될 수 있으려면, 누군가를 배척시키고 소외시켜서는 안 됩니다.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향유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많은 고민이 남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역시 격년 개최를 결심한 이후로 영화제 이외에 어떤 활동들을 할 수 있을지 열심히 상상하고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내년에 열릴 24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그 고민의 흔적을 다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조금은 긴 소식이 되었습니다. 올해 마지막 울림의 소식입니다. 마냥 행복하진 않았더라도, 서로에게 작고 깊은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연말이 되길 바랍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