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10회 카라마인권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01/16
2019년 11월 초, 영어로 작성된 이메일이 왔다. “Invitation(초청)”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메일 제목을 대충 보곤, 그저 ‘아 곧 무슨 영화제가 개막하나보네~’ 라는 생각으로 그 메일을 당장 열어보진 않았다. 하던 일을 마치고 이메일을 하나씩 다시 확인해보는데 그 메일은 카라마인권영화제(Karma Human Rights Film Festival)에서 보낸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활동에 큰 관심과 응원을 보내던 영화제가 보낸 메일이라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내용을 열어보았다. 다음 달에(12월 초)에 제 10회 카라마인권영화제를 개최하는데,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으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를 초청하고싶다는 내용이었다.
[사진1. 10th Karma Human Rights Film Festival 포스터 두 사람이 등을 기댄 모습이 검은색 면으로 채워져 있으며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팔을 뻗고 있다.]
이야기를 더하기 전에 카라마인권영화제와 서울인권영화제의 인연을 전해야 할 것 같다. 고운과 나(레고)는 2019년 3월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원월드인권영화제(One World International Human Rights Documentary Film Festival)에 출장을 다녀왔다. (우리 영화제가 그러하듯 원월드인권영화제는 영화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장애인접근권을 실천하는 데 몰두하는 영화제이다.) 원월드인권영화제 기간 중에 국제인권영화제네트워크(이하 HRFN) 미팅도 열렸는데 서울인권영화제도 HRFN 멤버이기에 당연히 이 미팅에 참석했다. 유럽권의 영화제들이 주를 이루었고 아시아권의 영화제는 서울인권영화제와 홍콩에서 열리는 인권영화제 뿐이라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 사람들이 바로 카라마인권영화제의 활동가들이었다. 카라마인권영화제는 요르단 암만에서 매년 개최되며, 아랍인권영화네트워크(Arab Network for Human Rights Films, 이하 ANHAR)의 허브 역할을 하는 영화제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대한 BDS를 선언하면서부터 더욱 더 아랍문화권의 인권영화 수급에 목말라있던 고운과 나는 카라마 활동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꼭 다시 만나자며, 다음 해외출장을 나갈 수 있다면 카라마인권영화제에 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카라마인권영화제에 갈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인권세미나를 아직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2~3주 후에 당장 요르단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리고 해외출장에 따른 지출까지.. 카라마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은 지난 만남에서 아랍인권에 큰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인권활동가가 가지고 있는 시선으로 심사위원단에 함께 해주기를 바랐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논의 끝에 직접 영화제 현장에서 가서 장편다큐멘터리 심사위원으로 연대하기로 하였다.
[사진 2. 10회 Karama인권영화제 개막식. 무대 위에 다섯 명의 활동가가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있다. 파란색 조명과 뿌연 안개가 무대에 가득하다. 영어 통역을 위한 스크린이 천장에 매달려있다.]
카라마인권영화제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지난 해로 10회째 매년 열리는 인권영화제이다. 10회 카라마인권영화제의 주제는 “제너레이션 카라마(Generation Karama)”로 슬로건은 “씽크 포워드(Think Forward)”를 내걸었다. 10주년을 맞아 영화제 활동가들의 세대교체를 다루기도 하면서 ‘다음 세대'라는 키워드로 현재 아랍문화권의 운동 의제인 청년, 청소년, 아동 세대의 인권을 다루는 작품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전시도 상영공간에서 함께 이루어졌다. 개막식에서는 여러 세대의 활동가들이 자신에게 영화제가 어떤 의미인지 전하는 공연을 하기도 하였고 팔레스타인을 그리워 하는 청년의 음악 공연 등도 이어졌다. 하이라이트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단순히 몇 초씩 이어 붙여서 만든 게 아니라 영상과 음악이 서로 연결되며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하는 편집이었다. 우리 영화제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을까?!
[사진 3. 10주년을 기념으로 열린 전시회. 오른쪽에는 3회 Karama인권영화제 포스터가 천장에서부터 사슬로 내려와 액자에 걸려있고 왼쪽에는 ANHAR 수상 트로피가 세워져 있다.]
영화제 기간 중에 ANHAR 정기 미팅을 포함한 여러 미팅이 진행되었다. 나는 “더 머스트 미트 미팅(The Must Meet Meeting)”에 참여하여 여러 영화제, 제작자,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아랍문화권의 인권을 다루는 신작들의 피칭을 들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실천하고 있는 BDS운동에 대해 나누고 서로 공감하며 지지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그 때마다 여기 오길 잘했다고, 그저 심사위원(게스트)이 아닌 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인권활동가로서 연대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사진 4. No Means No 섹션 토크. 무대에는 사회자를 포함하여 다섯명의 사람이 앉아있다. 그 뒤로는 패널의 소개가 영어로 되어있다.]
12월 5일 부터 12일 까지 8일 동안 15편의 애니메이션, 36편의 다큐멘터리, 43편의 극영화가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애니메이션과 극영화를 보며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다시 다룰 만한 작품을 찾았다. 예멘의 상황을 다루는 섹션, 아랍문화권의 성폭력 피해생존자 말하기를 다루는 섹션은 특히 집중해서 볼 수 밖에 없었다. 폐막작으로 상영된 작품은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을 다루고 있어 시놉시스만으로도 내 관심을 끌기에 이미 너무나도 충분했다.
[사진 5. <사마에게>(For Sama) 수상 트로피 전달. 왼쪽에는 수상 트로피를 손에 든 사람이 있고 오른쪽에는 레고가 서 있다.]
내가 꼼꼼히 보고 심사해야하는 작품은 총 10편으로 모두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유럽이나 북미권 영화제를 통해 아랍영화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랍문화권에서 열리는 인권영화제에서 만난 인권영화 프로그래밍은 굉장히 의미 있고 새로웠다. 인권영화를 서열 지을 수 없는것 처럼 작품들 간의 우열을 가리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10회 Karama인권영화제의 슬로건과 가장 닿아있는 작품이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카라마 페더 상(Karama Feather Award for feature documentary:카라마인권영화제의 상징은 깃털(Feather)이다)을 타게 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도 이미 상영되었고 개봉을 앞두고 있는 <사마에게(For Sama)>라는 작품이다. 폐막식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상을 건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기도 하였다.
[사진 6. 10회 Karama인권영화제를 함께 만든 사람들. 무대 위에 Karama인권영화제 활동가들, 심사위원들, 자원활동가들 모두가 올라가 있다.]
카라마인권영화제 활동가들에게 전할 서울인권영화제의 여러 기념품을 챙겨갔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환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노 투 핑크워싱(No to Pinkwashing)” 활동과 관련된 기념품, “나는 오류가 아니다(Errors: Not Me)” 티셔츠와 에코백이 머나먼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지가 있음을 서로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온기가 되면 좋겠다. 카라마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그 때까지 각자의 위치와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권영화를 나누기를 바라면서.. 투쟁~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레고
* Karama Human Rights Film Festival (https://www.karamafestiva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