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4회 서울인권영화제 국내작 선정을 마치며

2020년 24회 서울인권영화제 국내작 선정을 마치며

2020년 24회 서울인권영화제 국내작 선정을 마치며

 

2020년 24회를 맞은 서울인권영화제는 공모를 통해 418편의 국내작을 받아 보았습니다. 영화제를 격년 개최하기로 결정한 이후 처음으로 여는 작품공모이기에 큰 기대가 있었습니다. 한 해가 아닌 두 해 동안 한국사회의 인권 현장들이 영화 속에 어떻게 담겨 있을지 더욱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기대 속에서 만난 수많은 영화들을 두고 거듭 고민한 결과, 오는 6월 마로니에공원에서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자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국내작)으로 선정한 인권영화는 총 열다섯 편입니다.

 

주목할 만 한 것 중의 하나는 점점 개인의 서사를 통해 인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너무 사적이어서’ 함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인권의 언어로 지금, 여기에 새로이 기입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현상입니다. 이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의 현장을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으로 이해해나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 서사를 담은 영화가 ‘혼잣말’이 되지 않고 세상과 긴밀하게 조우하도록 만드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작업임이 분명합니다. ‘나’의 이야기가 결국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을지에 대한 치밀한 고민을 담은 영화들을 앞으로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한편 이번 공모의 작품들 중에서 투쟁의 현장을 담은 영상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2년 동안 한국 사회의 곳곳에서 여러 울림이 터져 나왔음에도, 이를 담아내지 못한 점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한편으로 인권영화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권의 현장이 꾸준히 기록될 수 있도록 서울인권영화제가 촉매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영화’를 ‘인권의 방법으로’ 함께 나누기 위해 그간 영화제가 고민하고 실천해왔던 바들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또 그러한 고민과 실천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기대해왔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목표하는 역할은 단순히 영화제 기간 동안 선정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영화들을 끊임없이 인권영화로 발굴하고 인권감수성을 확산시키기 위한 ‘인권 운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인권영화제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던져왔습니다.

 

가령 서울인권영화제의 공모작 신청서에는 해당 작품의 '키워드'를 직접 쓰는 칸이 있습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어떠한 인권의 서사를 영화에 녹여넣으려고 했는지에 대한 응답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키워드와 만났습니다. 작품의 선정 여부를 떠나, 점점 많은 영화가 소수자와 관련된 키워드와 함께 고민되고 제작된다는 점이 반가웠습니다. 같은 키워드일지라도 서로 다른 결로 풀어낸 작품들은 심사 과정에서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키워드를 “인권”으로만 제시한 작품도 많았습니다. 인권영화 속에는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서사, 다양한 장면과 순간이 담깁니다. 어떠한 큰 단어 안에 함께 묶여버린 존재를 꺼내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삶의 서사가 “인권”이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지기는 어렵습니다. 인권을 담은 영화가 만들어질 때, 어떤 존재의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지 세밀하게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이 그 고민의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함께 하고 보탬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또한 이번 공모에는 장애인접근권에 대한 작품정보를 받아보았습니다. 총 418편 중 한글자막이 있는 작품은 39개(9%), 소리정보가 포함된 한글자막(자막해설)이 있는 작품은 8개(1%),한국수어가 있는 작품은 1개(0.2%), 화면해설이 있는 작품은 4개(1%) 였습니다. 기계적인 수치이지만 이 숫자들은 영상물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빠른 시일 내” 혹은 “선정 후 작업/전달 예정”이라는 말을 남긴 출품자도 있었습니다. 또한 장애인접근권에 대한 작품 정보나 작업의 필요성이 “선정결과에 영향을 미치는게 아니므로 입력할 필요가 없는 사항이 아니냐”는 문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심사과정에 함께하는 사람은 비장애인으로만 구성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사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시청각장애인이 없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전제하는 영화제 문화에 서울인권영화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는 당연히 심사과정에서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영화는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여러 방법으로 실천해 왔습니다. 인권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그 영화를 누구와 함께 보거나 들을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하는 활동입니다. 나아가 이 고민은 ‘이미 완성된 작품’에 한글자막, 자막해설, 한국수어, 화면해설이라는 장치를 ‘추가적으로 삽입’하여 ‘배리어프리영화’로 만드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권영화에 있어서 영화 연출과 배리어프리 연출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이미 그 ‘배리어’를 기정사실화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쌓인 벽을 부수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기획과 연출 과정에서 처음부터 시청각장애인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드려는 시도는 생소할지언정 불가능한 상상이 아닙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앞으로 이러한 고민들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함께할 것을 약속하며, 영화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고민과 실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인권영화제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BDS(보이콧, 투자철회, 경제제재)에 해당하는 작품을 출품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 점령과 착취의 현실을 가리기 위해 이스라엘이 성소수자 친화적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는 ‘핑크워싱’에 반대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왔습니다. 이는 어떠한 창작물의 제작 및 배포가 부당한 권력에 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일 때, 이에 공모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 구조 자체를 비판하고자 함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을 옹호하는 내용의 영화는 물론이고, 그 내용과 관계없이 점령에 공모하는 기업, 조직, 기관 등으로부터 자금지원 또는 추천을 받은 영화는 출품될 수 없습니다.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준비하는 모든 활동가들은 함께 작품을 마주하며 논의와 논쟁의 긴 시간을 보내고,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엮어낸 인권영화들이 사람들의 이야기로 풍부해질 수 있기를, 또 그 이야기가 세상을 바꾸는 완결되지 않을 여정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선정된 작품들과 함께 오는 6월, 거리에서 열리는 24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날을 기대합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울림들이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돌아올 25회 공모에서도 이를 담아낸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의 현장을 기록하며 영상/영화로 연대하는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24회 서울인권영화제 국내작 상영 확정](가나다 순)

  • 굿마더 A Good Mother l 이유진 l 2020 l 23’46’’ l 극영화
  • 기억의 전쟁 Untold l 이길보라 l 2018 l 79’6’’ l 다큐멘터리
  •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No One Left Behind l 리슨투더시티 l 2018 l 32’ l 다큐멘터리
  • 당신의 사월 Yellow Ribbon l 주현숙 l 2019 l 86’16’’ l 다큐멘터리
  • 보이지 않는 아이들 The Unseen Children l 아오리 l 2019 l 32’ l 다큐멘터리
  •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This is Not a House l 정소희, 섹 알마문 l 2018 l 53’ l 다큐멘터리
  • 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 l 김정근 l 2019 l 88’ l 다큐멘터리
  • 우리는 매일매일 Us, Day by Day l 강유가람 l 2019 l 86’ l 다큐멘터리
  • 월성 Wolsong, The Vanishing Village l 남태제, 김성환 l 2019 l 85’ l 다큐멘터리
  • 을지네이티브 Eulji Native l 김찬민 l 2019 l 5’26’’ l 실험
  • 일하는 여자들 The Women Working in Broadcasting Stations l 김한별 l 2019 l 20’32’’ l 다큐멘터리
  • 청계천 아틀라스: 메이커 시티 l 리슨투더시티 l 2019 l 51’38’’ l 다큐멘터리
  • 퀴어053 Queer 053 l 박문칠 l 2019 l 39’ l 다큐멘터리
  • 해미를 찾아서 Finding Haemi l 허지은, 이경호 l 2019 l 25’15’’ l 극영화
  • 혜나, 라힐맘 Hyena, Rahil’s Mom l 로빈 쉬엑 l 2019 l 40’20’’ l 다큐멘터리
 

 

2020년 3월 18일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레고, 심지,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함께 만드는 자원활동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