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제주4.3 그리고 숫자와 타임라인에 기록되지 못한 삶에 대해서

(함께나눠요) 제주4.3 그리고 숫자와 타임라인에 기록되지 못한 삶에 대해서

  *[함께 나눠요]에서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지난 상영작을 함께 나눕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23회 서울인권영화제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 상영작 <말해의 사계절>과 <레드헌트>를 나눕니다. 

 

  “백모님요, 못살겠습니다.”

  “너 담배 배워라, 너 속 아프면 담배 배워라. 내가 너 죽을까 걱정이 돼서 죽겠다.”

 

  말해는 스물셋에 담배를 배웠다. 1950년이었다. 남편이 보도연맹 사건으로 잡혀가 사라지고, 시어머니도 그를 찾다 돌아가신 해였다. 말해의 백모는 ‘과부심신초’를 말해 입에 물렸다. 도저히 백모님 앞에서는 못 피겠다는 말해에게 백모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어떤 과부가 매일 신랑 묘 앞에서 울었더니 묏등에서 새파랗게 자랐다는 풀이 과부심신초, 곧 담배다. 그래서 여자들은 길에서 대놓고 담배 피워도 되지만 남자들은 숨겨야 한다. 백모는 말해 담배에 불도 붙여주고 어지러워하면 물도 주었다. 산 자를 위로하는 과부심신초 덕분인지 그 이야기 덕인지 말해는 스물셋 후 수십 년을 밀양에서 살았다. 2018년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말해의 사계절>은 모진 역사 속에서 살아온 말해의 기억을 기록한 영화다.

 

그림1. 영화 <말해의 사계절>의 한 장면. 땅바닥에 앉은 말해가 빨간 털장화와 꽃무늬 털양말을 신은 발을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적힌 폴리스라인 위에 올려두고 있다.

[그림1. 영화 <말해의 사계절>의 한 장면. 땅바닥에 앉은 말해가 빨간 털장화와 꽃무늬 털양말을 신은 발을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적힌 폴리스라인 위에 올려두고 있다.]

 

  2020년 4월이 되었다. 달력을 넘기며 4월 3일을 보았다. 달력에 표시된 날짜 하나만 보면 제주4.3도 한 네모 칸에 담아 냉동실에 넣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럴 때 나는 과부심신초를 생각하게 된다. 1948년 4월 3일부터 약 7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에서 죽었다. 희생자는 정확히 세어지지도 못했지만 약 2만 5천~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사람 하나하나 다 이야기가 있었다. 너무 많아서 숫자로도 까마득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외에도 누구와 어디서 살았는지, 곁에 말해 같은 사람이 있었는지, 뭘 좋아했는지, 아침에 일어나는 표정은 어땠는지, 어디에 점이 있었는지, 어떻게 웃었는지, 이렇게 끝없이 이어나갈 수 있는 세계가 있었다. 세계가 3만 번 사라졌다. 그 주변에는 과부심신초가 수십만 대 자라났을 것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무슨 심정으로 살아있을까. 말해는 웅덩이에 가서 자식들과 뛰어들까 한참을 고민하다 돌아왔다고 했다. 제주4.3 이후 제주 북촌리는 ‘무남촌’이라 불렸다고 한다. 남자가 없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강경 진압과 항쟁의 반복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제주4.3과 보도연맹 사건을 정권에 의한 ‘빨갱이’ 축출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일컬어지는 숫자와 타임라인 바깥에, 역사와 뒤엉켜 산 수많은 김말해에게 마음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보도연맹 사건은 말해가 과부심신초에 기대어서라도 죽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 사건이고 시어머니가 피를 토하며 죽는 것을 보아야 했던 사건이고 여성 혼자 밤에 칼을 쥐고 수십 년을 잠들게 했던 사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역사는 희생자의 젠더, 사회적 위치, 장애여부, 나이, 주변과의 관계 등 그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 때문에 다른 영향을 미치지만 영향을 안 미치진 못한다. 제주4.3의 3만 명과 그 주변 이야기는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많을까. 말해가 일기를 썼다면 방 두 칸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제주4.3 이야기는 제주를 가득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묵은 길었다. 97년 인권영화제에서 제주4.3을 다룬 <레드헌트>를 상영하려 했을 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집행위원장이 구속되었다. 희생을 희생이라고, 피해를 피해라고 말할 수 없는 채로 삶을 견뎌야 하는 일은 72년 전부터 수십 년 지속되었다. 지금도 제주에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있다. 일어난 이야기를 쏟아내더라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마을이 ‘공동체’이기 때문에 침묵해야 하는 말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림2 : 영화 <레드헌트>의 한 장면. 제주 4.3사건에 대해 인터뷰하는 노년여성이 “4.3사건. 아이구, 징그러워. 다 숨어서 살고…” 라고 답한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눈꼬리가 축 처진 상태로 말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높이가 낮은 집이 보인다.

[그림2 : 영화 <레드헌트>의 한 장면. 제주 4.3사건에 대해 인터뷰하는 노년여성이 “4.3사건. 아이구, 징그러워. 다 숨어서 살고…” 라고 답한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눈꼬리가 축 처진 상태로 말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높이가 낮은 집이 보인다.]

 

  나는 자주 부채감을 느낀다. 뒤늦게 태어나, 운좋게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건을 겪으며 살아온 나는 제주4.3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무엇을 모르는지 잊지 않고 싶어서 쓴다. 섣부르게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과 같게 여기고 싶지 않다. 하지만 피해를 피해라고 말하지 못하고 집단적인 폭력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리 곁에 함께 있고 싶다. 제주4.3을 “국가공권력에 대한 집단 희생”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고민해서 만든 설명이 있다. 그럼에도 그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지 못한다. 과부심신초를 피우며 말해가 어떤 아픔까지 태워버리려 했는지 모두 다 헤아리진 못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각기 다른 고통의 면면이 드러나는 이야기가. 그리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바라게 된다. 이념 분쟁 때문에 누군가가 죽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돌보는 자가 피해자를 찾아내고 무사히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되는 이야기에도 지치지 않고 받아들여줄 사람들이 광장에 가득 차는 이야기를.

 

*영화 <말해의 사계절>과 <레드헌트>는 상영지원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인권영화제로 연락 주세요. 02-313-2407, hrffseoul@gmail.com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