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활동가편지) 3개월차 상임활동가의 수줍은 고백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04/08
안녕하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심지입니다.
제가 상임활동가로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어 가는데요. 이런, ‘두 달’이라고 적고 보니 뭔가 ‘활동가’라고 떠들고 다니기엔 좀 부끄러워져서 등 뒤에 ‘초보 활동가’라고 큼지막하게 스티커라도 붙여야 하나 싶어집니다. 아직 이런저런 업무들에 적응 중인 시기라 제가 잘 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 저 개인적으로는 동료들과 함께 재밌게 일하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께 “일이 재밌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정말? 일이 재밌기까지 하다고?”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시더군요. 그러게요. ‘일’을 즐겁게 여길 수 있는 건 행운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상임활동가 제안을 받았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냉큼 제안을 수락해버려서 좀 민망할 정도였는데, 그만큼 제가 이 공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이라든가, 이곳에서라면 제가 꿈꿔왔던 것들을 하나씩 잘 펼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단단했던 것 같아요.
처음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하게 된 것은 2016년이었어요. 제가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친구가 이미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저 역시도 좋아할 만 한 공간이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했었지요. 그동안 제가 세상의 전부인 양 인식하고 있었던 저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이 부딪히면서 제 생각의 지평을 넓혀보고 싶다는 마음도 컸어요. ‘인권’이라는 게 뭔지, 그리고 ‘인권영화’라는 게 뭔지는 제게 아직도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영화를 통해서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곳곳의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조금 멋진 일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이래저래 서울인권영화제와의 만남만큼 제게 많은 설렘과 자극을 주는 일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바꿀 때까지” 기꺼이 “불온”해지려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삶 속에 섞여들면서, 저는 꽤 다른 톤의 색깔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느껴요. 어쩌면 저는 한층 더 뾰족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세상에 대해 이전보다 더 불만이 많아졌고, 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들을 그냥 넘겨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예전보다 친구도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해요...(흑흑) 그래도 여전히, 어떤 순간에서든, 심지어 친구들과 ‘인류애를 상실했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을 때도, 저를 추동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는데요.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는 일을 좀 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에게 앞으로 나아갈 연료가 되곤 했어요. 결국엔 늘 같이 욕하고, 싸우고, 부숴줄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 오래 주저앉아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장황하게 애정 고백을 늘어놓으려니 좀 민망한데, 모두 저의 진심인 걸 어쩌겠어요...
언제나 활동가를 ‘동경’해왔는데,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저는 제 친구들을 동경해왔는데, 사실 ‘동경’이라는 말엔 조금은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저는,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일 거라고 생각해왔고, ‘활동가’라는 이름 앞에선 조금 머뭇거리곤 했어요. 아직도 “좋은 활동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자신 있게 대답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늘 열심히 사랑하며, 함께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은 자신 있게 건네 보고 싶어요. 그 여정을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울림의 독자 여러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서울인권영화제는 5-6월 중에 온라인으로 코로나19에 관한 고민들을 나누는 기회를 갖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요. 지금 이 시점에 영화제로서, 인권단체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 제가 가장 신뢰하는 저의 친구들,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잘 고민해보겠습니다. 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