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장애인접근권 실천을 위한 고민과 이야기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04/22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영화는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라는 슬로건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화제의 여러 팀 중 ‘장애인접근권’팀은 모든 사람이 영화제에 올 수 있도록 고민하는 팀입니다.
장애인접근권팀은 서울인권영화제의 장애인접근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함께 공부하는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배리어프리를 다룬 자료를 찾아 각자 맡은 파트에 맞춰 발제를 준비하고 자료를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읽어본 자료에는 장애인을 ‘수혜자’로 규정지으며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미흡한 제도에 의존하고 있다는 허점이 존재했습니다. 장애인접근권팀은 이러한 시선이 옳지 않음을 발견하고 인권의 이름으로 장애인접근권을 실천하기 위한 고민을 했습니다. 화면해설과 자막해설은 이러한 고민을 거친 뒤에, 상영되는 공간과 작품의 특성에 맞게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의 메뉴얼을 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발견했습니다.
제일 먼저 배리어프리의 의미와 개요와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배리어프리의 정의와 배리어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으로 처음부터 보편성을 지향하지만, 배리어프리는 경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물리적인 공간에서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배리어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이 유사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접근권팀이 집중해야 할 대상이 누군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어서 화면해설을 공부했습니다. 최근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23회 개막작 <공동정범>의 화면해설을 화면해설이란, 보이는 화면을 소리로 해설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감상할 때 쓰이는 감각은 각자에게 다 다릅니다. 화면을 보지 않고도, 소리를 통해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화면해설입니다. 화면해설을 작성할 때 이 점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음성으로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를 위주로 해설합니다. 한편 화면해설 작가의 주관적인 표현보다는 영화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합니다. 화면해설 작가는 관객이 영화를 잘 감상할 수 있게 할 뿐, 자신의 방식대로 영화를 해석하는 역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면을 보지 않고도 관객으로서 온전히 영화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지요.
또한 장애인접근권팀에서 중요하게 이야기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인 만큼, 인권의 언어로 화면을 해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투쟁이나 인물의 삶을 인권의 언어로 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성별이분법적인 지칭은 지양합니다. “여자", “남자"와 같은 지칭보다는 “연대자", “행인" 등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인물이 드러나는 지칭을 사용합니다.
한편 기술적으로 화면해설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오픈형, 폐쇄형입니다. 오픈형은 서울인권영화제가 해온 방식으로 화면해설이 영상 안에 삽입되어 있어 모두에게 노출되는 방식입니다. 폐쇄형은 송수신기로 화면해설을 제공받는 형식입니다. 본 영상을 크게 수정하지 않으면서 별도로 제작이 가능한 방식입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디바이스와 앱을 통해 화면해설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례를 알아보면서 앞으로 영화제에서도 폐쇄형 화면해설을 진행할 수 있을지 논의해봤습니다. 폐쇄형은 화면해설과 영화의 원음을 더 뚜렷하게 구분하면서 잘 들릴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난청인의 경우 영화의 소리와 화면해설 소리가 함께 들릴 경우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서울인권영화제처럼 야외에서 상영하는 경우에는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송수신기를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24회 서울인권영화제에 도입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저런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해본다면 25회, 26회 영화제에서는 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미나를 하면서 <나만의 화면해설 원칙 세우기>를 해보았습니다.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은 선정작을 꼼꼼히 볼 것, 화면해설을 작성하는 작가의 의견을 집어넣지 않고 확실한 정보만 전달하도록 할 것, 성별지칭 하지 않기가 그것입니다. 단순히 화면해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화면해설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서울인권영화제에 어떤 화면해설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게 한 세미나였습니다.
이어서 자막해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기존의 자막해설 기호들을 공부하고 자막팀 구성을 위한 역할도 이 시간에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자막해설은 소리를 듣지 않고 자막으로써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소리를 자막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소리의 정보를 알기 쉽도록 배치하고, 화면에서 보이지 않는 소리를 텍스트로 옮겨주어 영화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외국영화에는 한글자막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한국영화에서 한글자막을 보기는 왜 힘들까요? 외국어로 영화를 감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소리로 영화를 감상하기 어려운 관객에게는 반드시 자막이 필요합니다. 대사 뿐만 아니라 대사가 아닌 소리, 즉 음악과 여러 효과음, 배경음 등에 대한 정보 역시 있어야 영화를 보다 풍부히 감상할 수 있겠지요.
그림 1. 23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프리크라임>의 한 장면. 한국어 자막과 한국수어 영상이 삽입되어있다.
우리는 자막해설이 무엇인지, 어떤 형식과 배치를 통해 자막해설을 구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자막해설이 왜 필요한지, 어떤 자막해설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막해설 역시 기술적으로 자막을 작성하고 입히는 것보다, 영화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맥락이 잘 전달될 수 있게 충분히 고민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세미나에서 나눈 고민들과 약속들을 바탕으로 24회 서울인권영화제 모든 상영작에 자막해설을 하기로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접근권이 이곳저곳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도 점검해보았습니다. 국내 영화제들이 장애인접근권에 대한 정보를 잘 제공하는지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서울인권영화제 사이트에 장애인접근권 안내가 잘 명시되어 있는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접근성에 대한 정보가 있는 ‘오시는 길' 안내가 필요합니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영화제에 올 때 접근이 쉬운 지하철 출구를 알려주거나, 버스 이용 시 어려움이 있다는 정보를 명시하는 게 어떨까 이야기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도 활동보조지원을 써놓기는 했지만 추가적으로 도보로 오시는 길을 음성으로 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정보 중 하나는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이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무실을 방문하려면 계단을 이용해야 합니다. 계단 이용이 어렵다면 사무실 말고도 접근성이 좋은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적어두면 좋겠지요. 지금은 홈페이지 개편으로 인해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겠지만 홈페이지 개편을 할 때 이 부분도 신경써서 게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저희가 한 고민들만이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답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인권영화는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슬로건에서 ‘누구나'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아야 것입니다. 장애인접근권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할 것입니다. 장애 여부와 상관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비장애와 장애를 구분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장애인접근권팀이 하여야 할 일일 것입니다. 세미나 이후 내린 결론으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무조건적인 정답은 없다. 왜 화면해설과 자막해설이 필요한지, 왜 인권영화를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자.’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