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사고 파는 건강>: 이윤이냐 생명이냐, 긴장의 사이에 선 의약품

(함께나눠요) <사고 파는 건강>: 이윤이냐 생명이냐, 긴장의 사이에 선 의약품

이윤이냐 생명이냐, 긴장의 사이에 선 의약품: 영화 <사고 파는 건강>과 의약품 접근권

 

*[함께 나눠요]에서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지난 상영작을 함께 나눕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12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사고 파는 건강>을 나눕니다. 늘픔약사회의 김누렁 활동가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온 세계가 상실의 고통과 두려움을 공유하는 요즘입니다. 하루빨리 이 시련이 끝나기를 바라는 한편, 코로나 이후 어떤 사회가 펼쳐질지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사고 파는 건강>은 그런 맥락에서 보기 좋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2007년에 나온 영화이고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문제가 되는 의약품의 공공성 이슈를 다루거든요. 코로나-19의 치료제, 감염병 극복을 위한 공적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지금, 이 영화를 함께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의약품은 기본적으로 ‘공공재’의 성격을 가집니다. 일단 어느 정도 건강해야 행복을 추구할 여건이 생기니까요. 하지만 의약품을 만드는 산업은 막대한 자본, 그리고 이윤 동기가 지배합니다. 오랜 시간 시장에 내맡겨둔 결과, 다국적 제약기업이 전 세계 의약품의 생산과 공급을 통제하는 상황에 이르렀죠. 이를 주도하는 거대 제약회사를 빅파마(Big Pharma)라고 부릅니다.

 

 영화가 주로 다루는 주제는 ‘의약품 접근성’입니다. 특히 지적 재산권과 특허에 대한 부분을 잘 파고들어 설명해줍니다. TRIPS로 불리는 ‘무역 관련 지식 재산권 협정’은 제약회사들이 특허에 목을 매기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TRIPS 이후 국제 무역에서 특허권이 절대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의약품을 20년 이상 세계 독점하는 일이 가능해졌거든요. 독점하는 동안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국가와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제약회사가 부르는 돈을 낼 수 있는 국가, 그리고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죠.

 

 그래도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에는 ‘국영제약사’(국가가 운영하는 제약회사)가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필수적인 의약품을 국가 차원에서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습니다. 또 ‘의약품 강제실시’ 정책을 실시하는 나라들도 있는데요. 비상시 공중보건을 목적으로 의약품의 공급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극히 제한적이고, 허용 기준과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이런 방법들을 활용해 의약품을 공적으로 공급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제약회사의 집요한 법적 공격을 견제할 힘, 공공성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정치적인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불평등과 재난은 약한 사람들에게 더 쉽게 노출되고, 더 많은 상처를 주곤 합니다. 영화는  가난하고 힘없는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에게 더 가혹한 의약품 공급 현실을 보여줍니다. 개발도상국을 가장 괴롭히는 질병은 AIDS, 말라리아 등 전염성 질병인데요. 이들 질환은 약만 있으면 극복 또는 관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약을 구매할 방법이 없어 감염자는 방치되고, 주변으로 전염됩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경우, 약이 있어도 그 약을 삼킬 깨끗한 물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매년 1500만 명이 남반구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전염성 질환의 85%가 발생하는 남반구에서 11%의 의료 비용을 쓰고 나머지 89%를 북반구에서 쓴다는 사실은, 이 조용한 재앙이 불평등에서 비롯된다는 걸 증명합니다.

 

 

 

 영화를 볼 때 오해를 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의약품 접근성 이슈는 비단 개발도상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국가가 크고 작게 의약품 사용에 제한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2001년에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한국의 건강보험 가격을 무시하고 공급하는 상징적인 사례가 있었구요. 최근 2년 사이만 하더라도, 간암 조영제 리피오돌의 500% 가격 인상 요구, 그리고 소아용 인공혈관 공급중단 사태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효과있는 몇몇 항암제들의 경우,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허가를 해줘도 보험에 등록하지 않고 일부러 높은 가격으로 비보험 등재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계속 코로나-19 치료제와 관련된 뉴스들이 생각납니다. 캐나다와 이스라엘, 브라질 등에서는 코로나-19에 치료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들에 강제실시를 발동하고 있거든요. 판데믹 앞에서는 선진국이라는 지위도 소용없고, 의약품 접근성이 보장된 나라만이 생존할 수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코로나-19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이 치료제가 보통의 시민들에게 접근할 수 없는 약이 될까 걱정입니다.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만큼,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국내 제약회사들은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주식 급등만 노리고 과장된 신약개발 정보를 유포하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백신 개발의 성공 가능성이 높을까요? 지금까지의 역사와 코로나 RNA 바이러스의 특성을 볼 때, 한국에서의 개발 성공은 사실상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제2, 제3의 코로나-19를 막기 위해서는 치료제를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히 온 시민이 함께 막아낸 코로나-19의 ‘성공신화’ 뒤에 가려진 체제의 취약성을 고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대남병원처럼 폐쇄된 정신병동 환자의 건강권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구로구 콜센터 노동자들의 집단감염 사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코로나-19 확진자들이 공공병원에 차고 넘칠 때 외면했던 민간병원들의 협조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앞으로 답을 찾을 질문이 많습니다. 

 

 제게 가장 시급한 일이 무언지 묻는다면, 저는 공공의료의 양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공공병원 비중은 5.8% 정도로, OECD 꼴찌거든요. (OECD 평균은 52.6%입니다) 이런 공공의료 강화를 기반으로, 의약품 접근권도 함께 높여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이윤이냐 생명이냐’ 하는 논쟁의 한 가운데 의약품이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당연히 이윤이지’라고 쉽게 대답하실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구조적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치료받을 권리를 온전히 누리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이런 현실을 직시하는 게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픔약사회 교육위원 김누렁

 
*영화 <사고 파는 건강>은 상영지원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인권영화제로 연락 주세요. 02-313-2407, hrffseoul@gmail.com